‘루니’

오피니언l승인2019.02.20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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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화 농촌진흥청
 
 ‘루니’의 눈꺼풀이 부풀어 올랐다. ‘체리아이’라 했다. 하루가 다르게 부풀어 오르더니 며칠 지나자 눈의 절반이나 덮어버렸다. ‘루니’는 자주 눈을 긁어 댔고 눈물까지 흘렸다. 수술 외에는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한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던 ‘루니’는 수술 후 조용히 잠들어 있다.
 ‘루니’를 만난 것은 십년 전이다. 경비실에서였다. 청원경찰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직원 부탁이 있어 분양을 받았는데, 그 직원은 이미 다른 강아지를 분양받아 입장이 곤란했다. 주인에게 돌려 줄 수도, 경비실에서 키울 수도 없어 난감하다는 하소연을 했다.
 얼마나 답답했던지 내게 강아지를 키울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강아지로 돌렸다. 어린 강아지는 경비실 귀퉁이에 있는 라면 박스에 앉아 있었다. 하얀 털에 브라운 색 작은 점들이 몸을 감고 있는 예쁜 강아지였다. 맑은 눈을 가진 강아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맑은 눈망울을 보면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던 초등학생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아이를 돌봐줄 가족이 없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유아원과 학원 등으로 배회해야 했다. 형제자매가 없는 아이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외로움에 힘겨워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많았다. 아이는 외로움 탓인지 대여섯 살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집안에 털이 날리고 배변의 불편함 때문에 반대를 했다. 그런데 경비실에서 마주친 강아지를 보면서 자꾸 아이가 생각이 났다.
 강아지와의 첫 만남 이후 며칠 동안 잠을 설쳤다. 갈바람의 유혹을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억새처럼 심한 갈등이 생겼다. 눈을 마주친 강아지에게 자꾸 마음이 갔다. 강아지가 어쩌면 아이의 외로움을 달래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을 흔들었다.
 아이에게 넌지시 강아지를 키우면 불편한 이야기를 했다. 일주일에 한번은 목욕을 시켜야 하고, 매일 오줌과 대변을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쉽지 않은 것이라 설명했다. 아이는 적극적이었다. 강아지만 데리고 오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엄마가 시키는 일은 뭐든 하겠다고 했다. 약속의 표시로 새끼손가락까지 내밀었다. 아이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만 있다면 못할게 뭐 있을까 싶어 분양을 받았다.
 아이가 중학교 첫 시험에서 성적이 중간쯤 되었다. 승부욕이 강한 아이는 조금씩 성적을 올리더니, 3학년이 되자 매우 흡족한 성적표를 내밀었다. 아이와 무릎을 마주하고 앉은 ‘루니’는 마치 성적표를 읽어 낸 듯 혀를 들어 올리고는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우리 부부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아이의 꿈은 뇌 과학자였다. ‘H’ 대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러나 아이는 대학에 아깝게 떨어졌다. 꿈꾸던 대학 입학 실패는 충격이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오랫동안 식음을 전폐하여 우리 부부의 애를 태웠다. 그런 아이를 ‘루니’는 방문 앞에 터를 잡고 기다렸다. 신라 박제상의 아내가 부럽지 않을 망부석이 되어버렸다. ‘루니’의 방문을 향한 자태는 흔들림이 없이 계속 되었다.
 초췌한 아이를 먼저 맞이한 것은 ‘루니’였다. 주위를 맴돌며 온갖 애교를 떨었다. ‘루니’의 애교덕분에 아이의 마음은 풀어졌다. 아이는 생의 첫 굴곡진 경험을 루니 덕분에 아주 빨리 털어냈다. 그 후 다른 대학에서 뇌 과학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루니’에게 미동이 있었다. 마취에서 깨어난 것이다. 잠시 뒤에 얼굴을 들었다.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하는데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몸을 일으키면 바로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그러다가 잠시 뒤 일어났다.
 가족 중 누군가 집에 없으면 ‘루니’는 현관문 주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현관문에 시선을 고정시켜 앉고 서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엉덩이가 끊어질 듯 꼬리를 심하게 흔들면 여지없이 가족이 들어온다. ‘모든 가족이 귀가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 루니’는 밥을 먹고 물을 마신다.
 ‘루니’는 우리 집 집지기다. 스스로 선택한 역할이다. 그러나 누구도 ‘루니’의 역할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집으로 향한 발걸음의 이유가 되어 주고 있다. 우리 집 집지기 ‘루니’가 건강하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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