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1차 생산에 머물지 않고 생산물을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농가들이 있다. 이들은 가공식품을 제조하고 판매처를 확대함으로써 수익을 올린다. 그 수익이 농업 1차 생산으로 얻어지는 수입 보다 몇배 큰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농식품 가공업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북지역에서 농식품 가공업으로 성장한 선도 농가를 찾아 이들이 어려움과 성공 스토리를 들어 봤다.

◆돌고 돌아 다시 인삼밭으로

김태엽씨(37)는 어려서부터 부모님 인삼 농사일이 싫었다. 학교 공부 후 집에 오면 인삼밭 풀을 뽑으라 하니 인삼농사가 지겨워질 수밖에 없었다.
2003년 군대를 제대한 김태엽씨는 이스라엘로 자원봉사를 떠났는데, 농장 일을 맡게 됐다. 농사일이 싫었는데 정작 농장 작업 봉사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이 때 만난 한국인 이집트 가이드의 소개로 2004년부터는 이집트 여행사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부터는 부모님으로부터 1천만 원을 구해 이집트에서 민박사업을 시작했다. 민박사업은 곳곳에서 성공했다. 하지만 민박업이 활성화될 때마다 계약과 상관없이 건물주들에게 쫒겨났다. 다른 나라에서는 사기를 당해도 호소할 데가 없었다.
이에 계약직으로 이집트 한국대사관에 취직했다. 계약직 2년 후면 정규직으로 전환해 준다는 약속에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취직 22개월 만에 외교부로부터 '해촉' 통지를 받았다. 정규직 증원이 부담스러웠던 상황이란 설명을 들었다.
결국, 2010년 귀국했고, 서울 모 백화점 요리부 보조로 취직했다.
김태엽씨는 본점에서 열심히 배운 덕에 지점 요리사로 파견됐고, 급여가 올랐다.
그러던 2012년 3월 아버지가 병을 얻어 고향 김제에 내려왔다. 인삼밭은 꾸준히 가꾸고 관리해야 하는데, 아버지 몸이 불편하니 농사일을 도와야 했다.
인삼밭을 관리하던 2012년 8월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인삼밭 상당 부분이 뒤집어졌다. 다 자란 인삼부터 썩기 시작했고, 수확기이던 그해 겨우 3분지 1의 인삼만 건졌다.
그런데 인삼밭을 복구하던 김태엽씨는 인삼의 사업성에 매력을 느꼈고, 인삼농사에 도전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뜻하지 않았던 귀농 결심이었다.

◆4대째 인삼농가

인삼 같은 특수작물은 재배 경험과 노하우가 매우 중요하다.
인삼 씨를 뿌릴 예정지 관리 기간만 해도 2년이 소요된다.
김태엽씨는 인삼재배 예정지를 임대해 호밀, 수단그라스, 보리 등 녹비작물을 재배하고 뒤집기를 반복한다. 또 홍삼박 등 영양분을 투여하고, 토질을 ph 5.5 및 EC(전기전도도) 0.5 이내로 맞추는 작업을 선행한다.
이 작업을 생략할 경우 인삼 성장이 느리거나, 아니면 인삼이 썩어 실패를 맞본다.
인삼이 썩어 망하면 건질 게 없어 쫄딱 망하는 경우가 생긴다.
더욱이 5년근을 재배하려 해도 예정지 관리기간까지 7년이 소요되고, 6년근을 재배하려면 8~9년이 소요된다.
이 기간 소득이 없으니 부업으로 살아가야 한다. 여기에 평(3.3㎡)당 약 5만원의 자금이 투입되니, 1만평 농사를 실패하면 최소 5억 원 이상의 재산을 날려야 한다.
반대로 질 좋은 인삼을 재배하면 5~6배의 소득을 올릴 수 있으니 그야말로 도박이다.
하지만 돈과 기술과 경험에다 버틸 수 있는 시간까지 필요하니 아무나 도전할 수 있는 농사도 아니다.
사실 김태엽씨의 증조부와 조부는 인삼의 고향 금산에서 평생 인삼을 재배한 농부였다. 당시 100% 인력으로만 경작해야 했던 인삼밭이여서 1인당 200평(660㎡)씩 가족들이 나서 인삼을 재배해야 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김태엽씨 아버지 역시 인삼농사를 습득했다.
그런데 연작장해로 인해 금산 지역에서 인삼을 재배할 밭이 부족해지자, 인삼 재배농가들은 강원도와 이천, 여주, 김제, 고창 등으로 인삼밭 후보지를 찾아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 때 김태엽씨 부모님도 이주를 결심했고, 1987년 김제에서 인삼밭을 다시 시작했다.
그런 부모님과 함께 인삼을 재배할 수 있으니 김태엽씨의 도전은 일단 반 이상은 성공을 보장받았다.
또한 인삼 재배를 위한 김제지역의 토질과 기후도 적당한 편이다. 실제 김제 인삼재배 250농가의 면적은 진안지역 재배면적을 넘어설 정도다.
이에 김태엽씨는 김제 백산지역에서 물 빠짐이 좋은 밭 약 2만평(6만여㎡)을 임차해 인삼 재배를 시작했다.
이와 함께 김제시농업기술센터와 전북농식품인력개발원 등에서 귀농귀촌 등 각종 교육에 참석해 지식과 정보를 얻고, 인맥을 넓혔다.

◆농사는 사업

인삼재배 및 농사 공부에 전념하던 김태엽씨는 2014년 장태평 전 농림부장관이 이끌던 '한국 영 파머스 클럽'을 만나게 된다.
젊은 농부들의 모임이었는데, 이곳에서 김태엽씨는 큰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됐다.
영 파머스 청년들은 생각하는 차원이 보다 앞서면서 높았고, 영농 규모와 목표도 일반 농가의 그것이 아니었다.
김태엽씨는 농사 공부뿐만 아니라 인적 네트워크, 정보 등을 교육센터와 영 파머스 클럽으로부터 얻었다.
김태엽씨는 이들과 함께 농업선진지를 견학하면서 "농가 가공업을 시작해야 겠다"고 결심했다.
김태엽씨는 "내가 싫어하던 농사가 사실은 내가 하고 싶어 하던 상업보다 규모도 크고 가능성도 큰 것을 이 때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태엽씨는 곧바로 금산 공장에서 OEM(주문자생산)방식으로 홍삼액을 생산했다. 동시에 공장 일을 도우면서 홍삼액 추출방법을 배웠다.
이어 김제 백산에 소규모 가공 창업지원으로 '인삼아빠 김태엽 홍삼' 공장을 마련했다.
직접 생산을 시작한 김태엽씨는 수많은 실패 끝에 홍삼액, 홍삼농축액, 수삼 등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부인 이재린(34)씨가 마케팅 및 가공에 참여했고, 생산 및 판매는 계획대로 진행됐다.
이를 통해 2018년 판매한 매출만 1억원이 넘는다.

◆신뢰의 김제인삼

김태엽씨는 부모님과 함께 인삼을 재배하며 기술을 전수받는다. 이어 밤에는 가공 및 공부에 나선다.
이 때문에 자신의 인삼과 가공제품의 품질에 자부심이 강하다.
김태엽씨는 "건강제품은 신뢰가 없으면 팔리지 않는 제품입니다. 제 홍삼액과 수삼은 신세계백화점에 납품됩니다. 100년 이상 경험이 전수된 재배법과 100% 천연재료, 하나하나 손으로 검수하는 덕에 불량률 제로 등의 장점으로 까다로운 백화점 평가를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제 제품은 신뢰의 제품입니다."라고 제품을 소개했다.
김태엽씨는 우체국쇼핑, 카카오파머, 카카오쇼핑, 11번가, 옥션, 지마켓, 위메프 등 대부분 온라인과 신세계백화점, 동김제농협로컬푸드, 이서휴게소 등 오프라인에서 판매를 확장하고 있다.
그런데 인삼의 산지로 김제지역의 인식이 낮아 판매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김태엽씨는 "소비자들은 김제에서 인삼을 재배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때문에 인삼밭과 공장을 직접 보고서야 홍삼액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면서 "진안군 보다 인삼 재배면적이 많음에도 지역적 브랜드 약점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기부가 판매로 이어져

김태엽씨는 어린이와 여성을 대상으로 인삼 소비를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최근 인삼 소비가 감소하는 가운데 인삼 소비를 주도하는 주부들의 관심이 필요한게 사실이다.
이에 김태엽씨는 미래 인삼소비의 큰손인 이화여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홍삼액 홍보에 나설 예정이다.
후에 남편과 아이들에게 인삼을 먹여야 할 이유를 미리 알려주겠다는 것이다.
또 인삼 소비 활성화를 위해 인삼라면 홍보도 계획하고 있다.
올 가을 각 김밥 전문점 본부에 인삼라면 레시피를 제공하고, 인삼을 공급할 예정이다.
김태엽씨는 "인삼협회와 농식품부가 어려워하니 저라도 나서 인삼을 홍보하려합니다."라면서 "이 때문에 최근 인삼라면을 자주 끓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김태엽씨의 계획은 상당히 능동적이다.
김태엽씨는 "제가 개인욕심을 부려봤자 큰 이익으로 돌아온 적이 없었습니다."면서 "반대로 멀리 보는 계획을 추진하면 판매가 늘어나는 경험을 최근 자주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태엽씨는 매년 명절이면 기부에 나선다.
지역 독거노인과 시청 주민복지과, 제1사회복지관 등에 수백박스씩 기부를 이어왔다. 기부가 2년 이상 지속되자 신뢰가 쌓였는지 지역민과 공무원들이 제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김태엽씨는 "제품 및 저에 대한 신뢰가 쌓여 매출 증대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매출 때문이라도 기부는 계속 이어갈 것입니다."라면서 웃었다.

◆가공업 후배에게

김태엽씨가 가공업을 생각하는 농가에게 주는 조언은 간단했다.
귀농을 선택할 경우 지역특화품목을 미리 공부하고, 품목 선정 시 조사를 거듭해야 실패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 보조금 지원 사업을 무조건 신청하고 보는 것도 피할 것을 주문했다. 보조금을 받으면 사업이 절실하지도 않고, 판로가 막히면 열정이 식는 경우를 많이 봤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공장이 멈추고, 땅이 묶이고, 유지비까지 드는 등 본인에게도 손해 끼칠 수 있으니, 신중하게 계획하고 신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황성조기자 전라북도농업기술원취재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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