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사과

오피니언l승인2019.03.13l15면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정근식 국민연금공단
 
  군복차림의 중년신사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가까운 지역에서 예비군 중대장으로 일하는 고향친구다. 대학 2학년 이후 처음 만났으니 36년만이다. 워낙 오랜만에 만나니 고향친구라고 하기에는 조금 멋쩍다. 그러나 학생수가 얼마 안 되는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녔으니 죽마고우가 틀림없다. 친구는 얼굴 주름이 조금 늘었을 뿐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반갑게 인사하는 그와는 달리 나는 미안함이 앞섰다.
 그에게 오래전 미안한 일을 한 적이 있다. 1983년 가을에 그와의 약속을 어겼다. 그 기억이 이상하게 지금껏 남아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몇 시간동안이나 약속 장소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우리는 같은 도시에서 대학생활을 했지만, 학교가 달라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나와 같은 학교에 다녔던 고향 선배와 도서관 입구에서 만났는데 친구와 같이 자취를 하고 있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선뜻 친구와 다음 주 어느 날 약속을 했다. 장소는 대학 정문이었다.
 문제가 생겼다. 내가 약속 날짜를 까맣게 잊고 나가지 못한 것이다. 약속을 어긴 사실도 모른 체 며칠이 지났다. 다시 선배를 만났는데 약속장소에 왜 나가지 않았냐고 따지듯 물었다. 그때서야 기억났지만 이미 늦었다. 그 뒤에 친구를 만나 사과를 하려 했지만 만나지 못했다. 나는 휴학을 했고 그는 바로 군입대 후 장교생활을 했다. 간간히 그가 전방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은 듣곤 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사실, 그의 고향이 이웃 동네라 명절 때 일부러 찾아가면 만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와 약속을 어겼던 일이 가슴속에 남아 있어 언젠가 만나는 날에는 꼭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얼마 전, 고향에서 가까운 도시로 발령이 났다. 고향 모임에 참석해서 친구의 소식을 들었다. 다음 주 자녀 결혼을 한다는 소식과 함께 고향에서 예비군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친구에게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했더니 반갑게 받았다. 그는 36년 전의 기억은 하지 못하는지 내게 부임 축하인사를 했다. 36년 전의 미안한 마음을 풀고자 사무실을 찾아가려 하자 그가 한 번 들르겠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군부대에 들어가는데, 부대에 가는 길에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이 있다고 했다. 마침 오늘 군부대를 다녀오던 길에 사무실을 방문한 것이다.
 약속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다. 누구든 살아가면서 수많은 약속을 한다. 나는 약속을 하면서 가끔 그때 친구를 생각하곤 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기다리는 마음은 어땠을까. 내가 친구 입장이라면 약속을 어긴 친구에게 어떻게 대했을까. 당연히 화가 많이 났을 것이고 상대가 보기도 싫었을 것이다.
 친구에게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해 특별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어쩌면 무던한 성격으로 이유가 있거니 하고 넘겼는지 모르겠다. 젊은 시절 그런 기억 탓인지 나는 약속시간이 늦은 친구들에게 너그러운 편이었다. 약속을 어겼다고 해서 특별히 책하거나 상대의 입장을 곤란하도록 이유를 물은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약속을 어긴 것이 어찌 그 친구와의 약속뿐이었을까. 기억은 하지 못하지만 많았을 것이다. 아내와의 약속, 아이들과의 약속, 다른 친구들과의 약속을 많이도 어겼을 것이다. 세심하지 못하고 덜렁대는 성격 탓에 많은 약속을 잊어버려 어겼을 것이고, 그때마다 질책도 많이 당했을 것이다. 약속을 지켰다고 해도 시간에 늦어 사과한 때도 많았을 것이다.
 약속을 어긴 때가 참 많았을 텐데. 중요한 약속을 어겨서 입장이 곤란할 때도 많았을 텐데. 왜 유독 그 친구와의 약속을 어긴 것을 기억하고 있을까. 아마 약속을 어기고도 질책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주는 것이 있으면 받을 것이 있다는데, 내가 아픈 기억만 주고 그 대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기억하는 그는 참 무던한 성격이다. 남들이 얘기하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친구다. 그의 너그러운 성격 탓에 약속을 어기고도 나는 대가를 치르지 못했다.
 만약 당시 그 친구가 약속을 어겼다고 심한 질책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마음의 빚이 상쇄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친구와의 약속을 어긴 것을 이렇게 오래도록 기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약속을 어긴지 36년 만에 뒤늦은 사과를 했다. 이십대 초반 청년시절의 미안한 마음을 50대 중반에서야 푼다. 사무실을 나가려고 일어서는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별 걸 다 기억한다고 핀잔을 주며 껄껄 웃으며 사무실을 나간다. 따스한 봄이다.

오피니언  opinion@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전라일보소개기사제보광고안내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5038]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로 75  |  대표전화 : 063)232-3132  |  팩스 : 063)284-070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유 동 성
Copyright © 2019 전라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