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미 농진청 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사 
 
  4대1, 5대1! 아파트 분양 경쟁률인가? 의외로 이 숫자는 아파트 텃밭 분양 경쟁률이다. 우스갯소리로 아파트 분양 받기보다 아파트 텃밭 분양받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파트 텃밭이 이토록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동주택단지라 일컫는 아파트는 국내 전체 주택유형 중 60%, 서울시 전체 주택유형 중 86.2%를 차지한다. 한국 인구의 절반, 도시민의 70% 가량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파트는 가장 인기 있는 주거형태인 동시에 가장 미움 받는 주거형태이기도 하다. 획일적이고 단조로운 공간 구조와 주민 간 갈등, 이웃 간 교류 저하와 함께 집단 이기주의의 온상이기도 하며, 차가운 콘크리트 덩어리라는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이러한 아파트의 현실에 주민들이 함께 더불어 사는 공간으로 아파트가 새롭게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운동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공동주택을 계획·시공하는 건설사에서는 조경면적을 확보하고 브랜드화된 주거공간의 이미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단지 내 조경계획 및 커뮤니티 시설계획의 일부로 텃밭을 도입하고 있다. 아파트의 브랜드 이미지도 향상시키면서 일상에서 녹지를 경험할 수 있는 유사 전원생활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으로서의 아파트 텃밭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넓은 면적은 아니지만 부식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공간으로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초창기 아파트 단지 내 텃밭은 경로당 노인들을 대상으로 소일거리 제공, 여가활동 중심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텃밭이나 1층 거주자를 위한 개별정원의 형태로 존재했다. 그러나 아파트라는 공공의 공간에서 ‘나의 작물’을 가꾼다는 이해상충이 발생하면서 ‘내가 기른 식물을 누군가가 가져갔어’라는 화(火)가 발생하고, ‘텃밭하는 사람들이 우리 아파트의 공동 수도를 사용해’라는 민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녹지와 전원의 아름다움과 위안을 기대하던 다른 입주민들은 삐죽삐죽 꽂힌 가지각색의 지주대와 바람에 나부끼는 찢어진 비닐들,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나는 거름이라는 불쾌함에 마주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텃밭 관리에 대한 선의의 관심이 오히려 과도한 관심과 부담, 간섭이 되고 호기롭게 시작했던 텃밭 농사가 실패로 끝나기도 하며, 설상가상으로 아파트 텃밭을 관리하고 있는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텃밭을 애물단지로 여겼다.
  이렇듯 위기를 맞고 있는 아파트 텃밭이 지속가능하며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진정한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공유해야 하는 가치가 필요하다. 바로 공공성, 지속가능성, 접근성, 심미성, 확장성이다.
  아파트는 아파트 주민 전체가 공유하고 소유하는 공간으로 공공성을 가진다. 따라서 개별 경작 공간을 최소화하고 이 공간은 아파트 주민 전체로부터 승인받은 일시적 활용의 공간임을 사용자는 인식해야 한다. 아파트 텃밭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거주민들의 자발적 운영과 관련 조직이 필요하다. 또한 성공적 경작 경험과 편이성 향상을 위한 시설과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친환경적으로 관리돼야 한다. 아파트 텃밭은 공공의 시설로 아파트 주민들은 누구나 접근 가능하도록 높은 경계나 울타리, 시건장치를 지양하고 최소한의 식물 보호를 위한 조치가 바람직하다.
  또한 다른 거주민에게 미적으로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단지 내 조경, 산책로 등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채소뿐만 아니라 화훼, 과수 등 다양한 식물의 식재를 통해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 부적절한 텃밭 관리로 인해 경관을 해치거나 민원의 소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파트 텃밭은 단순히 작물을 경작하는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아름다움, 즐거움과 만족감, 이웃 간의 교류 및 친목 도모로 그 목적이 확장돼야 하며, 세대 내 세대원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 아래윗집 등 이웃으로, 더 나아가 아파트 공동체 전체로 가치가 확장돼야 한다.
  개인의 즐거움에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아파트에서 텃밭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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