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1990년대 정치권에서 유래되었다는 ‘내로남불’이라는 용어가 2020년을 목전에 둔 시점에도 여전히 정치권에 자주 등장한다. 이전에 없었으나 새롭게 만들어진 용어가 기사나 방송에 등장한다는 것은 국민들을 쉽게 이해시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고, 그만큼 의사소통에 효과적일 수 있다. 게다가 언급되는 빈도가 잦다는 것은 그러한 현상이 이 사회에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용어는 단순한 신조어라기보다는 어쩌면 이 시대와 사회의 정서 및 정신까지도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라는 문장의 축약형인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는 ‘남이 할 때는 비난하던 행위를 자신이 할 때는 합리화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로 해석된다. 합리적인 판단은 우리가 지향하는 바이지만, 합리화하는 변명 일색의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우리가 동일한 행동을 하고도, 나와 남에게 적용하는 기준이 극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평등하지도, 인격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자신의 잘못된 행동은 미화하고, 남이 했을 때는 큰 목소리로 비난하는 등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점점 위선을 정당화하는 사고와 행동방식을 떠나보내야 한다.
왜 우리는 동일한 기준으로 나와 남을 바라보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스스로 반성하기를 꺼려하면서 다른 사람은 그렇게 쉽게 비판하는가? 라고 반문해보자. 어찌 보면 동일한 기준으로 남과 나를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반성하면서 같이 발전해나가자고 하는 상생과 공존의 가치를 지향하는 마음도 저변에 깔려있기는 하다. 그 가치에 주목하고, 마음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건강하고 권유할만한 덕목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제기될만한 자신의 행동까지도 오직 내가 한 행동이기 때문에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결국은 그런 생각들이 스스로를 비참한 함정에 몰아넣을 것이다.  
만일 정치집단이나 힘이 있는 집단이 맹목적으로 자신들만을 긍정한다면 그 사회는 그야말로 위험한 사회이고, 미래가 없는 사회이다. 그리고 타인의 행위를 근거 없이 혹은 자신의 취향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을 일삼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스스로 욕구를 충족시킬 능력이 충분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약한 자와 자기와 다른 자를 비난하면서 지배욕을 만족시키려는 폭력적 존재들이 자신들의 폭력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저지르는 폭력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우리는 다른 사람의 단점에 대한 전문가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조직은 구성원들의 장점의 벽돌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올려 짓는 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자신의 삶과 가정과 조직과 도시와 국가를 잘 운영하려면,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해결책과 미래의 방안을 모색함에 있어서, 자신을 비롯하여, 자신과 관계있는 구성원들의 장점을 모으고, 장점이 발휘되도록 정서적인 시스템과 물리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을 냉소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습관이 될 수 있다. 비난하는 습관은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에너지는 될 수 있겠지만 자신과 사회의 긍정적인 역사를 만드는 에너지는 될 수 없다. 자신이 비난을 일삼는 대상인 다른 사람보다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좀 더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비난을 통해서는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 보다는 자신이 건강하고 즐거울 수 있는 즐거움을 즐겨 찾고, 즐겨 만드는 일에 집중하여 다른 사람을 비난할 관심이나 시간을 줄여나가는 것도 한 가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나에게 로맨스면 다른 사람에게도 로맨스이고, 나에게 불륜이면 다른 사람에게도 불륜인 시대, 그리고 성적인 관계만으로 인간관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폭 좁고 창의력과 상상력이 빈약하여 가엾기까지 한 프리즘이 아닌 이해와 공감과 인정과 우정과 사랑과 감동과 감격이 있는 바람직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4월에는 내로남불의 습관적인 잡초를 제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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