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소리

오피니언l승인2019.05.02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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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식 국민연금공단 
 
피아노 소리가 들립니다. 작은 강의실에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퍼집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음률보다 교향악단의 연주보다 아름답고 경쾌합니다.
 나는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몇 번이나 고개를 옆으로 돌렸습니다. 건반을 두드리는 모습 때문입니다. 그녀는 반듯하게 자리에 앉아 가냘픈 손가락으로 피아니스트처럼 작은 점자를 누르며 수필을 읽고 있습니다. 신기하거나 놀랍다기보다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만약 그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장애인이라는 것을 아무도 알 수 없었을 겁니다.
 오늘 연주하는 곡은 ‘우리아빠 이야기’였습니다. 아빠의 자상한 이야기입니다. 어린시절 녹내장으로 시력이 나빠지는 딸을 위해 교과서를 확대해서 아빠표 큰책을 만들어 주고, 점선 공책을 진하게 선을 그어 주었다는 이야기는 아빠의 애틋한 마음이 읽혀집니다. 부녀가 외모와 성격이 꼭 닮았다고 합니다. 문학적인 기질을 닮아 아빠는 시를 좋아하고 딸은 수필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는 피아노 소리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그녀는 시각장애인이며 수필가입니다. 손으로 점자를 피아노 건반처럼 누르고 입으로 소리를 내는 점자니스트입니다. 점자니스트는 시각장애인이 책을 읽는 모습에 예술성을 담아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그녀의 수필에서 현재의 남편과 결혼하기까지 힘들었지만 행복한 사랑이야기를 읽었습니다. pc통신으로 우연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알게 되었고 장애인임을 알렸는데도 거부감없이 받아 주었다고 합니다. 결혼식날 가족과 하객이 온통 눈물바다가 된 이야기도 읽었습니다. 지금은 특수교사로 생활을 하면서 남편과 예쁜 공주와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애인은 사회에 적응하기가 힘듭니다. 서구유럽과는 달리 장애인의 대한 배려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생활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일부 장애인들은 정상적이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여 시설에 거주하는 분도 있습니다. 장애인 누구든 지금 피아노를 연주하는 작가처럼 자신의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선천적 장애보다 후천적 장애가 휠씬 더 힘들다고 합니다. 불편함이 없이 살다가 불편한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랍니다.
 그녀는 불빛조차도 가려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밝은 세상을 닫고 지내야 하는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겠지요. 볼 수 있는 것을 잃어버린 어린시절, 얼마나 절망하였을까요. 그런 여건에도 지금은 특수교사가 되었고 일반인도 하기 힘든 수필가로 등단하여 작가생활도 하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대견함을 넘어 존경을 보냅니다.
 아빠가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안타까움과 대견함이 있었을 겁니다. 어린 딸이 눈이 나빠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이야 말을 하지 않아도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러나 지금 맏딸인 그녀를 보면 대견하고 든든할 것 같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높다 했지요. 부모가 되어 보니 실감이 납니다.
 장애인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복지 업무를 담당할 때 단체로 체험하였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오르막을 오르기도 하였고 목발을 이용해서 걷기도 하였습니다. 모두 다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시각장애인 체험이었습니다. 안대로 두 눈을 가리고 그 위에 다시 눈 가리게를 하여 앞을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온통 검은색이었습니다.
 체험이 시작되었습니다. 눈 대신 지팡이를 이용하였습니다. 지하철을 타는 과정을 체험하였는데 지하철역과 똑 같은 모의 역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상상보다 많이 힘들었습니다. 나는 지하철을 탑승하는 과정을 확인하고 안대를 가렸는데도, 몇 걸음도 나가지 못하였습니다. 두 손으로 만져도 보고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기도 했고 장애인 블록을 따라갔지만 탑승할 장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나는 보조인을 하는 다른 직원들의 도움을 받고서야 체험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시각장애인에게 바닥에 있는 장애인 블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습니다. 계속 갈 수 있는 블록과 멈추어야 할 블록이 구별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의 불편함이 안타까워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우리의 삶은 무대 위의 연극이라고 합니다. 무대 위에 오르는 연극은 모두 행복한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행한 이야기도 있고 행복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행복하게 시작해서 불행하게 끝나는 이야기도 있고 불행한 과거를 딛고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녀가 공연하는 연극은 행복한 이야기만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수필에서 아니면 다른 지면에서라도 만날 때 무거운 저음보다는 밝고 경쾌한 피아노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동화책 주인공처럼 따뜻한 이야기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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