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일부터 나는

  지난 2일 화려하게 개막한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가 경쟁부문 시상식을 마치고 이틀 후인 11일 10일간의 영화축제 여정을 마친다. 275편의 상영작 가운데 수상의 기쁨을 안은 영화는 영화제를 기점으로 많은 관객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전주영화제를 빛낸 수상작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국제경쟁 대상 ‘내일부터 나는’(10일 오전 11시 30분. CGV3)
  이반 마르코비치의 두 번째 장편연출작이자 첫 번째 픽션 영화. 중국 감독 우린펑과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픽션이지만 이야기라고 할 만한 것은 건물관리인으로 일하는 남자가 그의 룸메이트와 이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이다. ‘내일부터 나는’은 인물이 놓인 상황을 진술하는 세팅을 세밀한 프레이밍과 인상적인 카메라 구도로 처리한다. 마르코비치는 완벽하게 통제된 매 장면에서 메가시티 베이징을 울창한 숲으로 인식하도록 한다. 시장, 거리, 건물, 장막, 창문, 문, 벽보, 격자형 유리와 블록을 활용하여 억류된 존재의 상태를 시각화한다. 이 영화의 성취는 오로지 시청각 이미지의 직조술로부터 나온다. 휴대전화 액정을 거울삼아 옷매 무시를 가다듬는 남자. 그림자나 실루엣으로 축소되어 프레임 아래 놓이는 인물들, 반사 이미지, 도시 지형을 활용한 조형적 장면화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재림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선사한다.
  ▲한국경쟁 대상 ‘흩어진 밤’(11일 오전 10시 30분 CGV6)
  김솔·이지형 감독 작품. 수민, 진호 남매가 사는 집, 부모는 남매에게 곧 이혼할 것임을 선포한다. 부모는 식구 네 명이 어떻게 쪼개져 살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하며, 보름가량 기다려 달라고 한다. 수민은 부모 중 누구와 살게 될지, 오빠 진호와도 떨어져 살게 되는 건지,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부모는 그런 수민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흩어진 밤’은 수민의 시점에서 본 한 가정의 붕괴와 부모 각자의 입장에서 본 삶의 피로를 병렬하며 어떤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 대신 그 붕괴의 현장에서 아이다운 행동으로 절망을 드러내는 상황을 섬세하게 따라간다. 개인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하는 결혼이라는 환상이 속절 없이 무너지고 있는 가운데 후손을 양육하는 고통과 보람이라는 어른의 책임은 방기되는 현실이 아이의 눈으로 생생하게 증언된다.
  ▲한국단편경쟁 대상 ‘파테르’(10일 오전 11시 CGV7)
  이상환 감독 작품. 레슬링 용어 파테르는 상대는 유리하고 자신은 불리한 처지에 놓이는 벌칙이다. 이 개념은 영화와 묘하게 어울린다. 고교 레슬링 선수 오성은 불법체류자다. 뛰어난 실력에도 전국체전에 나갈 수 없어서 유력한 레슬링계 인사의 양자로 입적되기만을 기다린다. 한 남자가 오성과 그의 어머니를 괴롭히며 그들 주변을 맴돈다. 그들은 왜인지도 모른 채 파테르를 받는 것 같다. 세상은 언제 그들을 전복시킬지 모른다. ‘파테르’는 특별한 해결의 논리나 수사학을 자제하며 ‘파테르의 현실’에 최대한 집중한다.
  ▲국제경쟁 작품상 ‘안식처’(10일 오후 7시 30분 CGV2)
  브라질 외곽의 전원 마을에 사는 마르셀루는 자신의 모든 열정을 로데오에 쏟아 붓는 성정이 느긋한 카우보이다. 그에게 찾아온 한 비극적인 사건은 깊은 상처로 남는다. 그는 조금씩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며 다시금 희망을 되찾게 된다. ‘안식처’는 때때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상당수의 장면이 허구로 연출된 세미 다큐멘터리이다. 데뷔 감독 엘베시우 마링스 주니어는 낮 동안 브라질 팜파스의 조용한 삶과 밤에 이루어지는 떠들썩한 로데오 경기, 일련의 폭력적인 장면들을 대조한다. 완만한 산책과 같은 복잡하지 않은 영화지만 조용히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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