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실천하는 ‘작은 혁신’

오피니언l승인2019.05.20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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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환 전주시설공단 이사장
 
전주시설공단에 이사장으로 부임하고 나서 강조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작은 혁신’입니다. 올 들어 공단에서 ‘종이 없는 보고와 회의’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솔직히 혁신이랄 것도 없습니다. 종이문서 출력 대신 이미 보편화된 노트북, 태블릿PC,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디바이스를 사용하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이니까요. 지자체와 공공기관 등 관료사회는 아직 민간기업보다 뒤쳐져 있는 영역이 많습니다. 그 이유를 저는 ‘관행에 대한 의심’의 문화가 없기 때문으로 진단합니다. 그래서 ‘작은 혁신’조차 어렵고 사회의 변화에 더딘 편입니다. 관행에 대한 의심이 왜 필요한 지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합니다.
새로 부임한 사단장이 부관과 함께 부대 시찰에 나섰습니다. 한참 걷다 보니 장병들이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에 쉴 수 있도록 아름답게 조성된 공원 하나가 보입니다. 그런데 공원 입구에 총을 든 경비병 2명이 서 있었습니다. “왜 공원에서 보초를 서고 있나?”라고 물으니 부관도 이유는 모른 채 전임, 또 그 전임 사단장 때부터 그래왔다고 합니다. 자초지종을 알아본 즉 경비병들이 보초를 서던 장소는 오래 전 탄약창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탄약창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그 자리가 공원으로 바뀌었는데도 관행대로 여전히 같은 장소에서 총을 든 채 경비를 서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 사무실 벽 한쪽에 ‘스몰 이즈 빅(Small is Big)'이란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작고 사소하게 여기는 것들이 실제로는 큰 것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종이 없는 보고와 회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것 같지만 큰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공단은 기존 종이 사용량의 70% 감축을 목표로 정했습니다. 한해 복사용지와 토너를 구입하는데 5000만 원 이상을 쓰니 3500만 원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직원들이 보다 본질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한 예로 이사회나 각종 위원회가 열리면 수십여 페이지에 달하는 회의 자료를 참석자 수대로 일일이 출력해 페이지를 맞추고, 스테이플러를 찍고, 견출지를 붙입니다. 해당 회의를 위한 일회성 자료를 만들기 위해 여러 직원들이 오전 내내 매달립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직원 본연의 업무에 집중한다면 업무성과는 훨씬 더 올라갈 것입니다.
환경보호에 기여할 수도 있습니다. 전주시는 현재 천만그루 나무심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환경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나무 한 그루 심는 것 못지않게 하나를 안 베어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종이를 생산하기 위해 나무를 얼마나 베어내는 지 생각한다면 말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권위적인 보고?회의 문화를 수평적 대화와 토론 문화로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공단은 2년 전부터 종이문서를 출력하는 대신 전자문서시스템을 통해 메모 형태로 보고를 합니다. 대면보고가 필요한 중요 안건은 노트북이나 태블릿PC에 문서를 담아 토론 중심으로 보고를 진행하면 됩니다.
지방의 한 작은 공기업에서 추진하는 일이지만 정착이 된다면 다른 공공기관과 지자체 등에도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합니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고, 50대도 노트북과 태블릿을 능숙하게 다루는 시대입니다.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는 강연과 저서를 통해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명쾌한 정의를 내립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을 거론하지만 본질은 ‘아톰의 세계를 비트의 세계로’ 바꾼다는 것입니다. 아톰은 물질, 즉 만질 수 있는 세계이고 비트는 말 그대로 디지털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 디바이스를 활용하는 ‘종이 없는 회의’는 어느 조직에서나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혁신’이요, 일상 속의 4차 산업혁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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