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남정미소 관장 및 전주 서학동사진관 관장 김지연이 두번째 사진 산문집 <전라선(열화당)>을 출간했다. 그는 앞서 나온 <감자꽃>(2017)에서 녹색 지붕의 정미소, 글자가 떨어져 나간 간판의 이발소, 마을 복덕방 같은 근대화상회 등 잊혀지고 하찮게 여겨지는 근대문화의 징표들에서 우리네 삶의 터전을 발견했다. 이번엔 사진가로 첫발을 내디뎠던 때로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남광주역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고 시작한 '남광주역' 연작, 전주천을 배경으로 대상을 특유의 쓸쓸한 색채로 담아낸 '전주천' 연작 등 그는 여전히 삶의 여백에 적은 글과 나란히 시간의 세세한 무늬를 사진으로 드러낸다.
  1부에서는 세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풍경과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을 시작하고 그가 한 첫 작업은 널리 알려진 ‘정미소’ 연작이 아니라, ‘남광주역’이었다. 1999년 여 름 한 지방신문에서 곧 남광주역이 철거된다는 기사를 보고 충격을 느낀 그는, 오랜 시간을 거쳐 온 것들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것을 붙잡는 유일한 수단이 사진임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고 한다. 남광주역은 1930년 신광주 역이라는 경전선 열차로 시작, 1938년 남광주역으로 이름이 바뀌고 담양, 화순을 거쳐 여수까지 운행했다. 마지막 날도 평소처럼 장이 서고, 무뚝뚝한 역장과 두 명의 역무원은 못 이기 는 척 역사 앞에서 사진 한 장을 남기고, 2000년 8월 10일 남광주역은 폐역된다.

  2부는 김지연 특유의 관찰과 일상에 대한 사유가 돋보이는 글들을 묶었다. ‘함께 산다는 일’에서는 앞마당에 숨어 사는 새끼 고양이들을 모른 척하다가도 고물거리는 생명이 눈에 밟혀 물그릇을 챙기는 의외의 면모를 만날 수 있다. ‘석 대의 선풍기’에서는 에어컨이 없는 전시장에서 고군분투한 선풍기들에 감사를 잊지 않았던 저자가 베란다에 아무렇게 놓여 있는 선풍기들을 보며 지난여름의 더위를 떠올린다. 작고 초라한 힘으로 한여름을 막아냈을 노고를 새삼 고마워하며 측은한 감정에 휩싸인다.
  이 책은 동시대의 역사인 동시에 사진가 개인의 역사이기도 하다. 소소하고 꾸밈없는 이야기들이 담겼던 전작 <감자꽃>이 품고 있었던 특징이 올올이 드러나 있다. 조금 다른 지점이라면 언제나 바삐 우리 곁을 가로지르던 대상이 ‘움직임을 멈추었다’는 슬픈 동시성에 기인한다. 김지연은 움직임과 멈춤에 주목한 데서 그치지 않고 사라진 역사에서 다시 출발시킨다. 본래의 기능을 잃고 쇠락해가는 역사의 순간에 닿았을 때 현재와 연결된 다리의 실체가 드러난다. 과거와 나와의 여행, 그의 사진이 우리에게 주는 고유성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사실 이번 사진 산문의 중심이라고 할 ‘남광주역’은 전라선과는 다른 경전선이고 오히려 호남선 쪽에 가깝다. 그럼에도 책 제목을 호남선이나 경전선이 아닌 ‘전라선’이라고 한 것은 전라도와 열차가 결합된 이미지를 의도한 것이다. 또한 글 ‘전라선’ 속 ‘나’의 모습은 작가의 젊은 시절의 지독한 아픔, 그것을 알아준 친구의 믿음, 그 덕에 오늘의 그를 있게 해 준 힘을 상징한다.
  한편 책에 실린 ‘남광주역’ 연작을 다룬 ‘[남광주역, 마지막 풍경’전은 5일부터 8월 18일까지 광주시 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전시 오프닝 행사는 12일 오후 5시 광주시립사진전시관에서 있을 예정이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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