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규민(국민연금공단)

그 해 여름은 더웠다. 열대야가 한 달 이상 계속되었다. 초등학생이던 나와 동생은 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몇 번이나 매달렸다. 계곡으로 물놀이를 가자며 졸랐다. 
“내일 토요일이니, 오전 근무 끝나면 배냇골 가자.”
 아버지 한마디에 뛸 듯이 기뻤다. 금요일 밤의 흥분은 해가 떨어져도, 다음날 해가 다시 떠올라도 식을 줄 몰랐다.
 토요일 점심을 먹고 난 뒤였다. 어머니는 계곡에서 먹을 복숭아와 삼겹살을 사러 슈퍼로 갔다. 집안에는 흥분한 우리 형제만 남았다.
 “동생아. 계곡에 가면 형이 고기 많이 잡아줄게. 내가 잡은 고기들을 잘 간수해.”
 동생은 어려서 물고기를 잘 잡지 못했지만, 물고기 그릇을 들고 따라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물고기 한 마리 얻을 수도 있었다. 설사 물고기를 얻을 수 없더라도 형이 잡은 물고기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계곡에서 실컷 놀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 형제는 만세를 불렀다. 우리는 기쁨에 겨워 춤을 추기 시작했다. 빙빙 돌다가 손을 잡고 돌기 시작했다. 신이 나는 만큼 회전 속도가 빨라졌다. 속도가 붙을수록 더욱 신이 났다. 동생의 발은 땅에서 떨어져 내 두 손에 의지하며 계속 돌고 있었다. 
 만화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손을 잡고 돌면서 손을 놓는 장면이다. 나는 동생의 손을 놓았다. 동생은 포물선을 그리며 우아하게 날아가다 도자기 화분에 머리를 부딪쳤다.
“쿵.”
동생은 바닥에 나뒹굴었고 아버지가 아끼는 도자기 화분은 깨졌다. 그리고 동네가 떠나가라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만화의 한 장면을 만들어 낸 것 같아 뿌듯함에 킬킬거렸다. 조그마한 일에도 곧잘 우는 어린아이였으니 동생의 울음은 걱정하지 않았다. 동생은 웅크려 머리를 감싸고 울다가 소리를 질렀다.
 “형, 내 머리에서 피 난다! 피!”
 머리에서 피가 나는 것은 죽을 만큼 다쳤다는 것이다. 동생은 선지피로 흥건해진 손을 내게 암행어사 마패마냥 내밀었다. 일순간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이렇게 동생을 잃을 순 없었다. 전화기부터 찾았다. 당시 가장 유행하던 TV 프로그램은 ‘긴급구조 119’ 이었다. 급히 전화를 걸었다.
 “119죠? 빨리 와 주세요. 동생이 머리에서 피가 많이 나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주소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방금 전까지 의기양양했던 나는 전화를 끊고 동생을 보았다. 동생 머리에서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집은 고요했고 동생이 앓는 소리만이 고요를 메웠다. 동생이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이 때, 옆집 대학생 누나가 대문을 두드렸다. 동생의 울음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온 것이다.   “에구, 놀다가 다쳤구나? 집에 구급상자 좀 가져와봐.”
 그 누나는 평소 우리 놀림감이었는데 그날은 천사였다. 지상에 내려오자마자 소독약과 솜으로 동생을 다시 살려냈다. 누나가 지혈을 끝낼 무렵, 구급차의 다급한 사이렌이 들렸다.
 그때까지 엄마는 집 앞 슈퍼에서 동네 아줌마들과 설전을 벌이며 복숭아를 고르고 있었다. 여전히 물건과 가격을 흥정 중이었다. 엄마의 복숭아 흥정을 잠재운 것은 구급차 사이렌 소리였다. 구급차는 급히 달려와 하필 엄마 앞에 섰다. 그리고는 소방대원이 물었다.
 “여기 국민주택 13호가 어디입니까?”
 “어? 13호는 우리집인데....”
놀란 엄마는 구급차보다 한참 먼저 집에 도착했다. 뒤늦게 도착한 소방대원은 동생의 상태를 확인했다. 지혈이 다 되었다면 괜찮을 거라며 위로를 해 주었다. 동생과 엄마는 소방관 아저씨와 함께 병원으로 갔고, 나는 무너진 세상에 혼자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동생이 다쳤다는 소식에 한 시간 거리를 삼십 분 만에 달려왔다. 다행히 아버지는 내게 화를 내지 않으셨다. ‘놀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하시며 위로를 해 주셨다. 동생은 병원에서 머리를 세 바늘 꿰맸다. 상처가 나을 때까지 머리를 감지 못한 동생은 그해 여름 내내 머리에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동생의 머리에는 아직 흉터가 남아있다.
 요즘은 우리 형제 대신에 사촌자매끼리 토닥거린다. 어쩌다 한 살 많은 동생 딸이 내 딸을 괴롭히면 아버지는 예전처럼 ‘놀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하신다. 그럴 수도 있다고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이 정겹다.
 무더운 여름의 시작이다. 여름만 되면 그때의 시큼한 동생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이번 여름에는 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모시고 그때 가지 못한 배냇골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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