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술 전주시의회의장
 
 
요즘 전주시 완산구 서학동을 찾을 때면 뿌듯함이 느껴진다. 서학동의 가치와 매력을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 안에 전주교대와 전주교대부설초등학교가 있고 교사와 학생들이 많아‘선생촌’이라 불렸던 서학동은 이제‘예술마을’로 더욱 유명해졌다.
 화가와 설치미술가·음악가·도예가·사진작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며 생활하고, 일상 속에 예술이 스며들면서 스러져가던 서학동이 새롭게 부활했다. 
 노후주거지 밀집 지역이었던 서학동은 자발적인 주민 참여와 예술의 힘으로 불씨를 만들어 전주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또 다른 주인공이 되기 시작했다.
 사실 서학동엔 예술마을만 있는 게 아니다. 후백제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간직하고 있는 동고산성과 남고산성, 임진왜란 시기에 활약한 의병장인 이정란 장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충경사, 삼국지의 영웅 관우를 모신 관성묘 등 훌륭한 문화유산이 자리하고 있다.
 또 전주 시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가 선사하는 아름다움은 가히 빼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남고산성 일대는 역사 깊은 문화재가 많고 가족과 함께 나들이 갈 수 있는 산책로까지 잘 갖추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경기전 특별 야간 탐방 프로그램인 <왕과의 산책>처럼 색다른 야경과 다양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갖추어져 있다면 남고산성을 비롯한 전주 동남부권 문화유적지의 매력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 것이다.
 작년에 진행되었던 전통산사문화재‘전주 남고사 남고모종과 산성유람’같은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면 어떨까 한다.
 문화재청 문화재활용사업 공모에 선정된 이 프로그램은 모두 4회에 걸쳐 운영되었는데, 진행방식을 이야기와 공연으로 풀어내 공간의 의미를 되새기고‘길을 걷는 즐거움’을 이끌어 내면서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서 소유하려는 욕심보다는 경험이나 내가 가치 있다고 믿는 것에 돈을 기꺼이 내놓으려고 하는 최근의‘소비문화’트렌드를 고려하면, 문화관광 콘텐츠도 가치와 경험 같은 비물질적인 것에 무게를 두고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다.
 후백제에서 시작되어 수천 년의 세월을 품에 간직하고 있는 남고산성과 그 일대에 산재해 있는 동남부권 문화유적지가 담고 있는 좋은 스토리를 참신하게 엮어낼 수 있다면 훌륭한 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전주 객리단길, 서학동 예술마을의 골목길들이 그러하듯이 남고산성을 비롯한 동남부권 문화유적지 역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훌륭한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남고산성 일대를 잘 보호하고 그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살려보자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지난 4월에 고덕산 충경사에서 남고산성을 정기적으로 답사하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시민 모임인“남고산성을 사랑하는 모임”발대식이 그것이다.
 스토리텔링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남고산성 일대가 한때 찬란했던 영광을 뒤로 하고 쓸쓸함만이 감도는 역사유적지로 덩그러니 남아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자산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 아닐까? 바로 우리들이 가꾸어 가야 할 소중한 역사의 보고(寶庫)이자 좋은 관광 콘텐츠에 목말라 온 전주의 또 다른 보물이기에 더욱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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