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바람

오피니언l승인2019.07.10l15면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권용원 국민연금공단
 
미나리전을 부친다. 프라이팬에 앞뒤가 노릇노릇하게 미나리전을 부치고 있다. 어머니께 접시에 담아 주었더니 눈이 휘둥그레 하시며 맛있게 드신다. 오래전, 어머니는 미나리전을 자주 부쳤다. 미나리전을 안주로 아버지와 우리 형제들이 마당에 둘러앉아 막걸리 잔이 오가며 정을 나누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십 수 년이 지나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지만, 그 모습은 늘 정겨움으로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 나는 오늘 어머니 대신 미나리전을 만들고 있다.
 지난 주말 아침 어머니가 계신 고향집을 찾았다. 필요한 약품과 식자재를 가지고 갔다. 방문을 열자 어머니는 반갑게 맞이하신다. 요즘 어머니는 나를 기다리지 못한다. 치매로 기다림 자체를 잊어버렸다. 나는 요양보호사에게 근황을 묻고, 가져간 물건을 정리하였다. 요양보호사를 배웅도 할 겸 마당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성인용 보행기를 의지하며 나를 따라 나섰다. 어머니의 불편한 모습을 보면서 내 탓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젯밤 두해 전 썼던 일기장을 보았다. 어머니가 건강하던 때였다. 그때도 오늘처럼 마트에서 장을 봐서 어머니댁에 왔다. 어머니는 차가 마당에 들어서기도 전에 배웅을 나왔다. 나를 기다리시느라 문밖을 몇 차례나 다녀가신 것이 눈에 선하다. 가져간 짐을 정리하고 뒤뜰에 갔다. 수년전에 심어놓았던 산다래 나무에 생수병이 과일처럼 달려있었다. 수액을 받기 위해서다. 산다래나무 수액이 몸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식에게 줄려고 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그날 어머니는 큰 음료수병에 수액을 4통이나 받아 두셨다. 그때도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으셨다. 보행에 불편함이 많았다. 당신이 드실 것이라면 수액을 받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어머니셨다. 그날, ‘어머니의 사랑에 가슴이 먹먹하게 느껴져 눈물을 보일 뻔 했다’ 라고 적혀 있었다. 일기장을 보고 어머니가 뵙고 싶어 오늘 고향집을 찾았다.
 어머니와 마을길을 걷다가 우리 논 앞에서 멈추었다. 논 귀퉁이에서 잘 자란 미나리가 보였다. 어머니께서 나를 힐끗 쳐다보며 미나리가 제법 좋다며 하셨다. 성인용 보행기에 기대어 무엇인가 갈망하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눈빛을 보면서 어머니에게 미나리전을 해 드리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낫과 바구니를 들고 미나리를 채취했다. 씻어서 채반에 담으니 양이 꽤 많았다. 치매를 앓고 난 뒤 맛있는 것도 없다며 투정하시는 어머니셨다. 오늘 어머니에게 무엇인가를 해 드리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올해 82세인 어머니는 1년 전부터 치매를 친구로 삼았다. 생각이나 행동이 다소 부족한 인지장애가 있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은 인지하는데 문제가 없으나 현재의 인지가 부족하다. 현재의 생각과 일들을 기억으로 전혀 저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누구를 기다리는 것도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눈앞에서 인사하면 크게 반가워하고 전화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그렇게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어머니는 불편한 몸으로 요즘도 텃밭을 가꾸고 있다. 평생 농사를 짓던 습관으로 농사일을 하신다. 머리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데로 농사일을 하신다. 텃밭의 농사는 제법 잘 가꾸셨다. 상추,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가 풍성히 열매를 맺고 있다. 이것 역시 당신의 먹거리가 아니라 자식의 먹거리이다. 어머니는 오전에는 늘 습관처럼 텃밭의 작물을 돌보며 김을 맨다.
 어머니가 치매를 앓으면서 내가 조금씩 철이 들기 시작했다. 평소에 하지 않는 안부전화도 드리고 고향집도 자주 찾아간다. 당신이 주신 사랑에 비교도 되지 않지만 지금부터라도 작은 효도를 하고 싶다. 오늘처럼 웃는 어머니의 미소를 보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싶다. 오십대 중반이지만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사랑은 고프다. 어머니와 함께 더 많은 시간과 추억들을 만들고 싶다.
 어머니는 미나리전을 두 접시나 드셨다. 배가 부르신지 트림까지 하신다. 오랜만에 배부르게 먹었다며 미소를 지으신다. 어머니의 밝은 모습에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밝아졌다. 나는 몇 년 뒤의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는 않다. 치매가 있더라도 지금처럼 의식이 있어 자식만은 알아보았으면, 내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며 웃어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갖는다.

오피니언  opinion@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전라일보소개기사제보광고안내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5038]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로 75  |  대표전화 : 063)232-3132  |  팩스 : 063)284-070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유 동 성
Copyright © 2019 전라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