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영 원광대 창업지원단 교수
 
 바야흐로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바닷가에 인파가 몰리는 한여름의 서막이 올랐다. 바닷가의 에너지 넘치는 휴양지 풍경 뒤에는 공동 분리수거함 중 가장 큰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늘 넘쳐있는 페트병들이 함께한다. 출근이나 등굣길에 물이나 차를 텀블러나 보온병에 넣어 휴대하고 종일 이동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일회용 플라스틱 페트병의 간편함과 마신 후 용기처리나 보관의 편리함을 더욱 실감할 것이다. 전국 각지의 유명 해수욕장을 넘어 해외 여행객과 방문객 수가 급증하면서 방문하는 지역이 관광객들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정한 공정 여행(Fair Travel) 가이드에도 일회용품과 생수 페트병 사용 줄이기가 이름을 올릴 지경에 이르렀다. 목 마른 사람이 마을의 공용 우물에 가서 두레박으로 깊은 우물물을 퍼 올려 갈증을 해소하던 시절로 돌아가기에 우리는 너무 멀리 왔다. 인류의 다양화된 활동반경과 증가한 이동양에 맞춰 진화하고 산업사회와 대량생산 구조의 상징이 된 알루미늄 캔과 플라스틱 페트병은 이제 어떠한 방법으로 잘 처리하고 줄이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그리고 이 처리와 감소의 방법은 수익성도 가능한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해외에서 바닷가에 버려진 비닐과 낚시 그물망 쓰레기들을 사람이 입을 수 있는 드레스라는 전혀 다른 용도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 트래션의 유래이다. 쓰레기를 의미하는 트래쉬와 패션이 합쳐진 트래션(Trashion)은 초장기에는 실용성보다 바다오염과 여행객들의 의식을 각성하고 이슈화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 점차 이 재료들의 자원화를 통해 제품으로 생산하고 구매와 대중의 사용까지 연결되는 새로운 의류가 나타난다. 페트병들을 수거해 세척과 가공을 거쳐 잘게 잘라 실로 만들어 스포츠웨어에서 원피스와 운동화까지 다양한 제품으로 선보인다.  페트병을 실과 원단으로 만드는 업체와 협업하는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와 하이패션 브랜드 랄프 로렌의 티셔츠를 비롯해 국내에서도 효성그룹과 니트 디자이너가 협업하여 가방으로 제품화하였다. 쓰레기를 완벽한 0으로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최대한 0에 가까워지도록 새로운 용도와 아이템으로 만들어 환경위기 이슈에 동참하고자 하는 빅 브랜드의 사회적 책임 일환으로도 볼 수 있겠다. 이 사례들은 사실상 원사와 원단화 공정에 필요한 기반시설과 규모를 갖춘 조건에서 가능하다 하겠다.
   다른 한 축을 긋고 있는 방법은 작은 규모에 적용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작은 규모와 지역거점 생산이지만 세계적인 온라인 판매망을 통해 수익을 유지하고 꾸준한 협업과 실질적 참여로 지속이 가능한 SLOC(Small Local Open Conneted)시나리오와 트래션의 만남이다. 페트병이나 알루미늄 캔처럼 세계 도처에서 사용되고 버려지는 일회용품의 장점을 꼽자면 역설적이게도 일관적인 물성과 형태 그리고 지속적인 자원의 생성이다. 보통 사용 후 혹은 사용 전 단계에서 버려진 재료에 디자인 감각을 더해 소비를 부르는 제품으로 만드는 것은 최초의 창작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각기 다른 양과 사용감 그리고 형태를 지닌 재료에 맞춰야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동부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 수공예 브랜드는 원통 형태의 캔을 자르고 날카로운 단면을 마모시킨 후 팔찌나 더 작은 귀걸이 제품을 판매한다. 기본 형태와 크기가 일정한 캔을 통해 성인 여성 평균 팔목 둘레에 따른 수량기획이 가능한 탓에 팔찌 디자인도 하나여서 재미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캔의 수많은 음료수 맛과 브랜드만큼 그림이 다양하며 같은 디자인의 팔찌는 나오지 않는다. 작은 규모에서 버려진 캔들을 자원화하고 디자이너의 감각으로 방향성을 제시하고 지역인력과 함께 유연적인 대량생산이 가능한 제조시스템은 유니크한 제품을 생산한다. 이후 온라인 판로를 거쳐 미국 전역에서 나아가 북미와 남미까지 확산된 소비자에게 소개되고 구매로 연결된다. 이로써 산업화와 대량생산의 상징인 일회용 캔이 사람의 수공예와 만나 제조업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영국이나 핀란드의 유럽 대학에서도 이러한 분위기에 발맞춰 옷에 비해 몸에 닿는 면적이 적고 수공예로 진입이 비교적 쉬운 트래션 수업 모형을 진행한다. 일회용품 쓰레기 자원을 지역정부 및 기관과 협업하여 제공받고 지역주민이 모이는 축제나 플리 마켓에 결과물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수익모형 전 단계를 훈련한다. 전공자들이 모여 캔 고리만으로 만든 목걸이나 나아가 폐차의 타이어나 자전거의 부속품으로 만든 장식품까지 커뮤니티를 자생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세계적인 그리고 국가적인 사회 및 환경 문제일수록 같은 방향성과 민주적 소통으로 구성원의 실제적 액션이 가능한 작은 단위의 시나리오가 모여야 해결이 더 빠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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