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화 국민연금공단
 
어릴 적 즐겨보았던 명작만화 영화시리즈가 있다. 원작은 ‘소공녀 세라’이다. 주인공인 ‘세라’는 부자인 아버지 덕에 기숙학교에서 모두의 부러움을 받으며 공주처럼 살아간다. 하지만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게 되면서 경제적인 지원이 끊겨 기숙학교에서 하녀처럼 살게 되었다. 교장인 ‘민칭’선생님에게 갖은 구박을 받는 불쌍한 처지가 되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 날마다 억울하게 구박받는 세라가 불쌍해서 속상해하며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세라는 힘든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다행 찾기 놀이’를 하면서 스스로를 달랬다. 하루아침에 바뀐 자기처지를 비관하고 슬퍼하기보다는 긍정의 힘으로 이겨냈다. 넓고 호화롭던 방에서 난방도 되지 않는 옥탑방으로 쫓겨났지만, 높은 옥탑방에서만 볼 수 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깥풍경을 보며 ‘다행이야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어서...’ 라며 스스로를 위로 했다. 다른 힘든 상황이 닥쳐도 ‘다행이야 오늘은 저녁을 굶지 않아서... 다행이야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하는 수업시간에 청소를 할 수 있어서...’ 세라는 힘든 환경을 '다행 찾기 놀이'라고 생각하며 힘겨운 현실을 버텨낸다.
 내가 사는 아파트 뒤쪽에 도로가 있다. 처음엔 시끄러운 소음이 싫어 베란다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도로가 강을 끼고 있어 해질녘에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다. 만약 베란다 뒤에 다른 아파트가  있었다면 소음은 덜하겠지만 건물에 가려서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했을 때, 아파트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노을은 나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되었다. 나는 '다행 찾기 놀이'를 하는 세라처럼 중얼거려 본다. ‘다행이야 이렇게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어서...’
 수년 전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가 생각이 난다. 왜 우리에게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기나 하는 원망스런 마음과 엄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너무 무서웠다. 이미 외할아버지를 암으로 잃은 경험이 있는 엄마는 앞으로 다가올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두려움에 떨었다.
우리모녀가 그 시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부끄럽지만 지혜롭고 의연하게 보내질 못하였다.
 엄마는 5시간동안 수술을 받고 수차례의 항암치료를 했다.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고통도 많았다. 부엌살림에 서투른 나는 엄마의 먹거리를 잘 챙기지 못했다. 그저 힘들어하는 엄마를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함께 불안하고 힘든 순간을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엄마에게 말했었다. ‘엄마 죽지 마... 나는 아직 엄마가 필요해...’
 다행히 엄마는 지금 내 곁에 잘 계신다.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통 받고 계시지만 못난 딸 옆에서 잘 계신다. 엄마를 볼 때면 가끔 나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다행이야 엄마가 내 곁에 있어줘서...’
 질병 초기에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자신에게 일어난 불운에 대해 한탄하며 힘들어한다. 하지만 질병 관리를 하지 못하거나 시간이 흘러 증상이 악화되었을 때 질병이 초기였던 그때를 그리워한다. ‘다시 그때만 돌아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힘들어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텐데... 좀 더 관리를 잘하고 좋은 시간을 보냈을 텐데...’ 하는 후회를 한다.
불운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불행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그런 상황에 대비하여 원치 않는 불운이 생겼을 때 생각해봄이 어떨까? 다행이야 이보다 더 나쁘지 않아서...
 인간이란 간사함의 동물이다. 나한테 주어진 것은 당연하게 여기고 없는 것은 애석해하며 우울해한다. 당연하게 주어진 것들은 그것이 사라진 후에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나한테 일어나지 말기를 바랐던 일이 생겼을 때 소공녀 세라처럼 ‘다행 찾기 놀이’를 해보자. 인생이란 항상 주기만 하는 것도 또 뺏기만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어린 세라가 '다행 찾기 놀이'를 통해 꿋꿋하게 시련을 이겨낸 것처럼 우리도 '다행 찾기 놀이'를 통해 좀 더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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