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선 전주대학교 부총장
 
 
최근 대일관계의 악화로 인해 대일본 관련 구호가 국민들 사이에서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구호이다. 이에 따라 많은 도민들이 자발적으로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가 서서히 설득력을 띄며 은근히 퍼져나가고 있다. 일본인들의 마음은 속마음과 겉마음이 많이 다른 반면 한국인들은 냄비근성이 있다고 한다. 한국의 불매운동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일본정부의 태도는 이러한 한국인의 속성을 빗대서한 얘기이다. 따라서 일시적인 대일 감정에 호소하기 보다는 좀 더 냉정한 이성과 판단력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일제잔재와 대일관계를 준비하여야 한다고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분위기도 있다. 이러한 음직임에 따라 지난 7월 14일 전주시에서는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의 창업자 호에서 유래된 동산동의 명칭을 여의동으로 개칭하였으며 이에 따른 조례도 변경하였다.
필자는 이미 '진정한 독립은 언어의 독립이다'(2019년 3월 10일자 전라포럼)에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가 일본의 지배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언어의 독립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제로부터 광복을 맞이한 지 74주년이 되는 해이며 자유대한민국이 수립된 지 71년이 돼는 해이지만 여전히 일제 강점기의 잔재인 일본식로마자표기법을 우리는 성, 이름, 그리고 지명에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 또한 어느 곳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최초 한글의 라틴로마표기는 한국인들의 필요에 의해서보다는 서양인들의 필요에 의해 시작되었고, 1832년(순조 32년) 독일인 의사 Philipp Franz J. B. van Siebold(1796-1866)와 1835년 영국인 선교사 W. H. Medhurst 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한국인에 의해 주도된 로마자 표기는 일제치하인 1931년 당시 조선어학회(현재 한글학회)에서 논의가 시작되었으며, 1936년 8월 제4차 국제언어학자대회에서 초안이 발표되었고, 1940년 6월 25일에 최초의 로마자표기법 통일안인 ‘조선어학회안’이 비로서 발표되게 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 정부안은  1948년 제정한 ‘한글을 로오마자로 적는 법’이며, 1959년 문교부의‘한글의 로마자 표기법’,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등 양 국제 스포츠 행사를 하여 개정한 1984년 1월 문교부의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거쳐 2000년 7월 7일 문화관광부 고시 제2000-8호로 개정·공포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있으며 이는 현행 정부의 공식로마자표기법이다.
최초 한국인에 의해 주도된 조선어학회안은 ??외래어표기법통일안??의 부록2에 ‘조선어음 라마자표기법’을 실었으며 당시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던 일본어식 로마자표기를 따라 <ㅏ, ㅔ, ㅣ, ㅗ, ㅜ>를 각각 <a, e, i, o, u>로 적기로 하였다. 이는 모음이 5개 뿐 인 일본어식 로마자표기를  한국어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4차례에 걸친 정부안이 개정되었지만 이러한 일본어식 모음표기 방식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우리의 이름과 지명의 영문표기를 상 Sang, 담 Dam, 강 Gang, 숭 Sung, 순 Sun, 손 Son, 메 Me, 헤 He, 이 I, 히 Hi 로 적고 ‘생, 댐, 갱, 성, 선, 선, 미, 히, 아이, 하이’로 읽히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하루빨리 일본식 잔재인 로마자표기를 영어의 철자와 발음에 기초한 표기로 바꾸어 상 Saang, 담 Daam, 강 Gaang, 숭 Soong, 순 Soon, 손 Sohn, 성 Sung, 선 Sun, 이 Yee, 히 Hee 로 바꾸어 적도록 하자. 정부안이 개정되기 이전에 나와 우리가족의 성씨 및 이름의 영문표기부터 고쳐 일제의 잔재 청산에 참여하도록 하자.
이제 대일관계는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일시적인 대응이 아닌 은근과 끈기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대응하여 냄비근성이 있는 국민이라는 인식을 바꾸는데 동참하자. 나와 우리의 가족부터 기존의 일본식 로마자표기를 영어식 철자와 발음에 기초한 영문표기로 바꾸자. 언어는 한 민족 또는 국가의 정체성을 나타내며 ‘진정한 독립은 언어의 독립이다’는 의식을 가지고 독립운동에 참여하지 못한 우리는 일제의 잔재인 로마자표기 독립운동에 참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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