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환 전주시설공단 이사장

공단 이사장으로 일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틈만 나면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조직에서 '관 냄새를 빼자'는 것입니다. ‘관 냄새’는 과도한 절차와 형식주의, 그리고 의전과 권위주의를 뜻합니다. 오늘은 과도한 의전과 권위의식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얼마 전 도내 한 지자체의 과잉의전이 도마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새로 부임하는 부시장을 모셔가기 위한 차량이 주차금지 구역인 청사 계단 입구까지 진입해서 청사를 방문하는 시민들은 차량을 비켜 가야 하는 불편을 감수했다고 합니다. 청사 계단과 합법적으로 주차할 수 있는 곳까지 10여 미터에 불과한데 굳이 그렇게까지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과거 총리로 재직할 당시 서울역 기차 플랫폼까지 관용차를 대는가 하면, KTX 오송역 근처 버스정류장에 여러 대의 의전차량을 대기시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친 바 있습니다. 당연히 의전이 지나치다는 시민의 비난과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과잉의전은 공식적인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우리사회에 만연한 관행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소위 ‘스스로 높다’고 생각하는 분들 가운데 행사 자리에서 인사말을 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거나 상석에 자리를 마련해 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담당 직원에게 화풀이를 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행사 담당자들은 정작 행사의 본질이나 일반시민들을 신경 쓰기보다 누구를 어느 자리에 앉힐지, 인사말 순서를 어떻게 정할지 등의 의전에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최근 몇몇 지자체들이 공무원들에게 쓸데없는 부담을 주고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과도한 의전을 없애기 위해 ‘행사의전 간소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립니다. 은평구는 우산 씌워주기, 차 문 열어주기 등 불필요한 의전 관행을 없애고, 내빈 소개와 축사를 최소화하는 '은평구 행사 실무 편람'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창원시 또한 ‘시민 중심’의 의전 행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습니다. 시민 중심이라는 취지에 맞게 앞자리는 시민에게 돌려주고, 시 간부와 초청 인사는 객석 가운데에 자리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합니다. 수십억, 수백억 원을 들여 도로를 넓히고 다리를 놓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박수를 받을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인도의 정신적·정치적 지도자로 추앙받은 간디는 어떠한 공식적 지위도 갖지 않았죠. 그가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의 마하트마로 불린 것은 공적 자리나 권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인도 민중을 이끈 그의 권위와 리더십이 깍듯한 의전에서 비롯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민중과 함께 한 소탈한 행보와 높은 도덕성으로 인해 참된 권위가 자연스럽게 발현된 것이죠.
예수도 높은 자리를 다투는 제자들에게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며 역설의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어느 자리에 있든지 탈권위와 겸손한 자세로 스스로를 낮추면 남들이 알아서 높여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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