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 현상공모 당선작품인 박동화의 희곡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가 전주극장과 이리 삼남극장 무대에 오른 1961년 전라북도 현대 연극의 막이 열렸다.

전라북도 현대 연극사에서 개척자·선구자·산파·아버지 등의 수식어가 붙을 만큼 크고 명확한 족적을 남긴 희곡작가이자 연극연출가인 박동화(1911∼1978).

그를 기억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2019전주독서대전의 사전 행사로 열리는 작고작가세미나 ‘전북 현대 연극의 개척자, 극작가 박동화’이다. 25일 오후 4시 최명희문학관.

이날 세미나는 극작가인 전주대학교 최기우 겸임교수가 ‘영원한 글쓰기 노동자’를 주제로 박동화의 삶과 작품 세계를 말하고, 박동화의 딸이자 배우인 박의원 씨가 ‘내 아버지 박동화’를 들려준다.

㈔동화기념사업회 유영규 대표와 전주대 류경호 교수, 전북연극협회 조민철 회장은 1961년 전북대학교에서 극예술을 익힌 학생들을 중심으로 극단 창작극회를 창단한 이후 20여 년 동안 40여 편의 작품을 창작·연출하고, 전북예총회장과 전북연극협회장 등을 역임하며 전북의 연극판을 일군 60·70년대 박동화와 전주의 연극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꽃을 펼친다.

전북연극배우협회 이부열 회장과 창작극회 박규현 대표, 배우 유가연 씨는 박동화의 작품 ‘망자석’과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 등 대표작품을 낭독한다.

특히 이날 최기우 교수는 일제강점기 가난한 청년예술인 박동화가 극예술연구회·실험무대·조선연극협회·중앙무대 등에서 배우와 작가로 활동하며 일제에 저항했던 일화를 중심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최 교수는 “모국어도, 생존권도 빼앗겨 버렸던 그 길고 어두운 밤, 변절자와 비겁자와 위선자들이 자기 얼굴을 감추기 위해 스스로 암흑에 몸을 묻었을 때, 박동화는 당당하게 역사에 저항했다”면서 “일기와 문예 작품들을 일본 경찰에 압수당했고, 혹독한 고문을 겪었으며, 지속적인 연극 활동 탄압으로 그는 일제에 치가 떨리는 증오심을 갖게 됐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박동화는 1928년 광주학생의거에 가담해 퇴학당했으며, 30년대 한글잡지인 <호남평론>에 많은 글을 발표했다. 또한, 사상극을 썼다는 이유로 좌익으로 몰렸고, 1942년 출판법·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돼 수감생활을 했다.

전남 영암 출신인 박동화는 1947년 군산에서 경향신문 지사장과 군산민보 편집장을 맡으며 전북과 첫 인연을 맺었고, 1956년 전북대학교 대학신문 편집국장으로 부임하며 전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후 전북대와 창작극회를 중심으로 전주·전북의 연극판을 일구면서 20여 년 동안 폭발하듯 작품을 발표했다. 유고집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와 <창문을 닫아라>가 있으며, 1999년 연극인·미술인 등이 힘을 모아 전주채련공원에 그의 흉상을 건립했다.
/이병재기자·kanadasa@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