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물줄기를 벗 삼아 걷다’ 
‘선비의 길’은 옛 선비들이 걸었던 길이다. 맑은 섬진강 물줄기를 벗 삼아 자연과 교류하고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기도 한다. 훈몽재(訓蒙齋)를 출발해서 종착지인 낙덕정(樂德亭)까지 가는 곳곳에 선비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선비의 길이다. 따스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섬진강을 따라 선비가 되어 걸어보는 건 어떨까?

▲훈몽재(訓蒙齋)
순창 ‘선비의 길’은 훈몽재에서 출발한다. 훈몽재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 선생이 조선 명종 3년(1548년)에 순창 점안촌 백방산 자락에 후학 양성을 위해 지은 강학당이다. 훈몽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됐는데 선생의 5대손인 자연당(自然堂) 김시서(金時瑞, 1652~1707)에 의해 1680년경 훈몽재 터 인근에 ‘자연당(自然堂)’이라는 이름으로 복원됐다가 역시 퇴락했다. 훈몽재 유지는 현재 건물이 있는 곳 바로 뒤쪽인데 전라북도 지정문화재 자료 제189호로 지정돼 있다.
지금의 훈몽재는 순창군이 하서 선생의 학문적 업적과 정신을 후세에 전승 발전시키고, 나아가 역사적 가치 재조명과 예절, 전통문화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2009년에 중건했다. 건물은 훈몽재, 자연당, 양생당, 삼연정이 있다.
훈몽재 마당에는 고인돌 1기가 있는데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정치권력이나 경제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훈몽재 마당에 있는 고인돌은 전형적인 남방식이다. 이곳에 고인돌이 있다는 것은 청동기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임을 추정해볼 수 있다. 춘몽재 앞 강가에는 대학암이라는 큰 바위가 있는데 송강 정철(1536~1593)의 친필인 ‘大學巖(대학암)’이란 글자가 새겨진 바위이다. 송강이 소년 시절 이곳에서 하서에게 대학을 배웠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선비의 길을 걷다
선비의 길은 데크길로 시작된다. 데크길이 섬진강 물길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는데 시원하게 펼쳐진 섬진강 풍경을 구경하면서 걷는 길이 가을의 멋을 더한다. 데크길 바로 아래에는 작은 물길이 지난다.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탁족이라도 하고 싶은 분위기이다.
물가에는 물봉선꽃도 예쁘게 피어있는데 물봉선꽃은 그곳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데크길 주변이 온통 물봉선꽃 군락지로 가을의 화려함을 감상할 수 있다.
잔잔했던 섬진강이 소리를 내며 흐르는데 강에 설치된 보의 영향 때문이다. 보가 설치된 구간에는 물이 잠시 머무르면서 잔잔하다가 보에서 멀어지면 물의 흐름이 소리로 표현되는 것이다. 강변에는 왕버들을 비롯해 여러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시원한 풍경을 연출한다.
길을 걷다 보면 데크길 위에 참나무 가지가 떨어져 길을 덮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요즘 숲길을 걸으면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잘린 나뭇가지를 보면 예리하게 잘린 것을 볼 수 있는데 도토리거위벌레가 열매에 알을 낳고 가지를 잘라냈기 때문이다. 나뭇가지에는 잎이 달려있어 떨어질 때 바람개비 역할을 해서 땅바닥에 안착할 수 있다. 열매 안에 있는 알은 부화하여 애벌레가 되고, 애벌레는  열매를 먹고 성장해 땅속에서 겨울을 나게 되는 것이다.
▲황토 포장길
데크길이 끝나는 지점에 정자가 보인다. 보통은 육각이나 팔각형 정자인데 이곳에 있는 정자는 사각형이다. 잠시 쉬었다 가도록 만든 공간으로 정자를 지나면 황토 포장길이 펼쳐진다. 섬진강 물줄기에 한 발 더 다가가서 걸을 수 있다.
정자 앞에 있는 보에 머무르고 있는 물은 맑고 잔잔하다. 맑은 강물에 비친 반영이 아름답다. 강물은 마치 거울과 같은데 잔잔해진 강물은 어느 구간까지 계속돼 잔잔하고 편안함을 선사하고 있다.
길은 세 갈레로 갈라진다. 포장된 길은 강에서 멀어지고 둘레길은 강 제방을 따라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구간은 흙길이다. 다시 강물이 소리 내며 흐르는데 바로 위에 있는 보에서 물이 넘쳐흐르면서 내는 소리임을 알 수 있다. 흐르는 강물이 참 맑다. 그래서 그런지 물소리도 청아하다.
이팝나무 가로수길이 펼쳐진다. 봄에 이팝나무꽃 하얗게 핀 시기에는 더욱 예쁨을 뽐낼 것 같다. 이팝나무길이 끝나는 지점에 다리가 나오는데 바로 석보교이다. 다리는 강을 가로질러 마을로 연결되고 강을 건너면 석보마을이 나온다. 훈몽재에서 3.3km 떨어진 곳인데 이제 목적지까지 2.7km 남았다
▲마을 이야기를 들으며 걷는 길
이제부터는 아스팔트 포장길이다. 도로를 따라 가을 들판도 보고 마을 구경도 하면서 걸어가 보자. 활짝 핀 익모초꽃이며 노랗게 익은 벼 등 그야말로 황금빛 물결을 보며 걷는 길이 마냥 가을산책을 하는 느낌을 준다. 
제방 아래로 난 길을 따라가면 마을이 나온다. 이곳부터 종점까지는 마을 경관을 보면서 걷는 구간이다. 농촌 마을 풍경도 보고 마을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도 들어보면서 걷는 길이다. 처음 만날 수 있는 마을은 사창(社倉)마을이다. 사창은 조선시대 의창, 상평창과 함께 3대 구황 시설(곡물 대여기관)인데 민간 자치적으로 설립한 기관이다. 마을 이름으로 보아 사창(社倉)이 있었던 곳으로 보인다.
사창마을을 지나 마을 길을 따라 다음 마을로 발길을 옮겨보자.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가을 분위기가 완연하고 들판에는 황금빛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두 번째 마을은 중리마을이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되는데 마을 입구에는 키가 큰 중국 단풍나무 옆에 조형 예술품이 서있다. 저울을 형상화했는데 직감적으로 가인 김병로 선생의 생가가 있는 마을이라는 느낌을 들게 한다.
이 마을은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 1887~1964) 초대 대법원장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마을 입구부터 김병로 선생을 상징하는 조형물과 벽화가 눈에 띈다. 벽화는 타일 모자이크로 되어 있어 고급스러운 느낌인데 마을 전체가 김병로 선생을 기리고 있는 분위기이다.
김병로 선생의 생가는 둘레길이 지나는 길옆에 있다. 생가는 단출한 초가집이다. 김병로 선생의 소박하고 청렴한 생활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장소이다. 담장에 심어진 능소화나무가 인상적이다. 김병로 선생은 선비의 길 출발점에서 만났던 하서 김인후의 15대손이다.
▲둘레길 종점, 낙덕정(樂德亭)
김병로 선생 생가를 지나 들판길을 걸어가 보자. 둘레길의 종점인 낙덕정으로 가는 길이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가을이 익어가고 있는 풍경과 마주치는데 풍요로움을 만끽하면서 여유를 부리며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걷다 보면 막다른 삼거리길과 마주친다. 정면에 보이는 언덕 소나무숲 사이로 정자가 살짝 보인다. 목적지인 낙덕정이다. 돌계단을 따라 오르니 낙덕정이 온전한 모습으로 반기고 있다. 낙덕정은 하서 김인수 선생의 발자취를 추모하기 위해 1900년 후손이 세운 정자이다. 하서 김인후 선생은 훈몽재에서 후학들에게 성리학을 전수했었는데 날씨가 좋은 날이면 제자들과 함께 경치가 수려한 이곳을 찾아 강론과 담소를 즐겼다고 알려져 있다. 
선비의 길은 훈몽재에서 시작해서 낙덕정에서 끝나는 길이다. 조선 시대 선비인 하서 김인후 선생의 발자취가 둘레길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맑은 가을날 가을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길이지만 선비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는 의미 있는 길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김대연기자·red@/자료제공=전북도청 전북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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