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터줏대감님의 안내로 한나절 개정마을 여행을 했다. 이번글은 기행문이다. 첫 번째 방문지는 개정면 아산리 장군봉 아래에는 장군샘이다. 그 옛날 동네에 힘센 장수가 살고 있었단다. 장수는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고는 늘 커다란 바위로 샘을 닫아 놓아 누구도 열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해인가 전쟁이 일어났고 장수는 샘물을 닫지 않고 전쟁터에 나갔다. 그리고 전장터에서 장수가 전사를 했다. 그 뒤 그 샘을 장군샘이라 불렀고 샘 뒷산을 장군봉이라고 했단다. 장군봉의 기운을 받아서 일까 개정에서는 임진왜란에 칠전량 해전에 참전하여 전사한 최호장군부터 근현대의 채기석 장군, 김기석 장군, 양기준 준장 등 여러 명의 장군들이 나왔다.
넘처 흐르던 그 맑고 깨끗한 장군샘은 오염수로 식수판정을 받아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야기 한 바가지를 퍼서 고봉산으로 향했다. 산의 높이는 150m가 채 안되지만 낮은 들이 지천인 곳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높은 봉우리였으리라. 고봉산 정상부에는 조선후기 의병이셨고, 학자였던 연재 송병선 선생이 유림들에게 강연을 하던 낙영정과 서낭서원자리가 있다. 고봉산은 성산면과 임피면의 경계에 걸쳐 있다. 임피의 유림들이 고봉산의 낙영정에 자주 들렀다한다. 낙영정을 뒤고 하고 산을 좀 더 오르면 지장암이 있다.

설에 의하면 지장암은 신라 진평 왕 때 세워진 암자라고 한다. 작은 암자로 천년을 견디어오다가 10여년전 불이 나서 무너졌다. 버려지다시피 한 절터를 지금의 주지스님이 품어주셨고 10년 동안 다듬어진 지장암은 천년 고찰이라는 제 자리를 찾았고 문화재(전통사찰 56호)로 승격되었다. 주지스님은 차를 대접해 주셨다. 차방엔 긴 나무토막이 벽을 장식하고 있어서 궁금했다. 암자가 불이 나서 탈 때 겨우 구한 집 재료였는데 후세에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서 벽에 붙여놓았다고 한다.
지장암 입구에는 담 대신 작은 연못이 있다. 명산대찰도 물이 마르면 폐찰이 된다는데 연못물은 솟아나는 샘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작은 연못에 어울리게 연꽃잎은 아기 손바닥처럼 작고 윤기가 났다. 연못을 지나 절 마당에 들어서면 절이 어찌나 아늑한지 이유인 즉 나즈막한 고봉산 자락에 어울리게 절 지붕의 높이를 1m 20cm나 낮추어서 지었기 때문이란다. 단청을 하지 않은 나무 색은 풍광에 바래서 오랜 세월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여염집 뒷곁을 연상케하는 장독대 뒤로 낮은 담장이 쳐 있다. 담장 너머는 개정들이 만경강까지 이어지고 멀리 연병산과 대봉산, 용화산이 수묵화처럼 하늘과 맛닿아 있다. 들판 사이사이에는 둔덕 같은 작은 산과 그 주변에 집들 그리고 멀리 아파트들도 보인다. 스님은 이 자리에 서면 하루에도 다섯가지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안개가 짙게 낀 새벽이면 개정 뜰은 해무 낀 바다 같고, 안개가 걷히는 아침이면 다도해 같고, 해가 중천에 뜨면 일파만파요, 해질녘이면 수십개의 석양이 물이 들고 저녘이면 멀리 보이는 아파트의 불빛은 불야성을 이룬단다. 사찰을 가득 감싸는 은서목 향기를 뒤로 하고 나무가지로 지붕을 이룬 산길을 지나 장산 오줌바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줌줄기처럼 졸졸 흘러내리는 물이 한 번도 마른적이 없다는 오줌바위 옆에 세워진 오염수 판정판이 무색하게 물소리가 산새소리처럼 청명하다.

다음 코스는 장터목이다. 이곳은 군산에서 처음 열린 장터란다. 회현면 원우리, 옥산면 남내리, 개정면 옥석리가 만나는 꼭지점에 자연발생적이 장이 생겼다. 만경강에서 난 것과 들에서 난 것들을 가지고 와서 서로 바꾸고 소, 말, 돼지, 조개, 농산물들을 가지고 와서 파는 큰 장으로 바뀌어 갔는데 땅의 경계지점이라 해서 이곳을 지경이라고 했다. 대야에 철도가 나면서 지경장이 옮겨졌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구름이 모여든다는 의미를 가진 운회리와 산의 모습이 용이 누워있는 형상이라서 지은 와룡리를 지나 아차골에 이르렀다. 아차골은 좁고 약간 오르막 길이었는데 길 위에서 보니 만경강과 금강이 다 보이는 지점이었다. 예전에는 망루가 있었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아차산처럼 전략상 중요한 지점이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하는 설이 있다고 한다.

지금의 월명공설운동장이 있는 사정리를 지나기 전 대방 마을에는 남근석이 세워져 있다. 이유인즉 사정리 여자들이 바람나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개정은 물이 열리다는 뜻이다. 물이 솟고 그 물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골골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인생이 그렇듯이 마을은 따뜻하고도 아픈 기억을 함께 담고 있다. 개정도 일제강점기의 아픈 흔적을 담고 있다. 서개정 마을의 이영춘 가옥은 일제강점기 구마모토 농장주의 별장이었다. 구마모토 농장의 의사였던 이영춘 박사님의 이야기를 풀어내려면 지면을 꽉 채우고도 모자란다. 쌍천, 영혼과 육을 살리는 두 개의 우물이 되고자 했던 이영춘 박사님의 고귀한 정신을 만날 수 있는 서개정을 지나 바르메라고도 하는 발산리 발산초등학교 뒷 정원은 군산의 보물 두 개가 있는 곳이다. 발산리 5층 석탑과 용주석 석등이다. 뿐만 아니라 농장주 시마타니가 전국에서 수집해 온 석조물들이 가득하다. 식민지의 아픔을 제자리를 잃은 문화재를 보면서 잠시나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마지막 여행지는 터주대감이 살고 있는 율북리이다. 밤이 많이 나는 산의 북쪽에 있다해서 붙여진 율북리의 논 한가운데 사방이 유리로 된 커피숍이 있다. 한나절 여행의 감상을 나누기에는 제격인 곳이다.
한나절 마을여행이 이토록 가슴을 뛰게 할 줄이야. 아직도 풀어내야 할 이야기가 많다. 흙 색이 검어서 흑석이고 그 동네의 흙빛깔 때문인지 어둠이 일찍 찾아온단다. 아동리 호덕마을은 범덕굴이라고 불렀다. 산의 형국이 마치 호랑이처럼 생겼으며 실제로 호랑이가 살았다고 전한다. 운회리 송호마을은 소나무 밭 밑에 물이 괴어 있어서 작은 못을 이루고 있다는데서 소나무송자와 호수호자를 써 송호라 하였단다.

장군봉, 장군샘, 범덕굴, 운회리, 와룡리, 송호리, 아차골, 서개정, 발산리, 사정리, 대방, 율북리를 터주대감의 해설과 함께 한나절 동안 여행을 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 보물찾기였다. 알고보니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 보물이다.

도움을 주신분 : 이종예 해설사님, 지장암 주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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