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지역이 점진적으로 인구감소와 함께 쇠퇴일로에 있으며, 소멸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멸론이 위기의식을 부추기고 있다. 한편 도시는 더욱 더 첨단을 향해 달려가고, 지역은 그런 도시가 누리는 눈에 보이는 안락함과 빠르고 편리한 소비생활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에 때때로 직면한다. 현재 지역은 과연 지역 주민이 주인이 되어 있는 지, 그리고 어떠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지역이 중앙정부 사업의 수행 대상인 비주체적 하부 단위공간으로 머무르지 않고,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공동체를 지향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역의 학계와 문화계 현장전문가들, 그리고 주민들과의 협업과 신뢰는 몇가지 실천적 성과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따라서 안팎으로 지역의 역할과 활동의 의미가 주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익명성과 개인주의와 거대 공간 내부의 첨단이벤트를 중심으로 하는 도시에 비해 지역이 지니고 있는 경쟁력은 그래서 공동체성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전북지역 14개 시군에서 개최되는 대표 축제나 작은 축제들은 대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열린 공간인 들판과 천변 혹은 거리에서 공동체와 집단적 연대감을 실감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사업으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영토가 넓지 않고, 국가중심으로 교육계를 비롯한 모든 시장이 형성되었으며, 지방분권제도의 안착이 늦었던 탓에 우리의 지역들은 아직도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수도권 의존적인 삶이 지배적이었던 기억과 관행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현재에도 여전히 지역의 삶과 정책은 수도권의 것과 닮아있다. 수도권의 발전경험과 발전방향을 모방하는 것이 최선이었던 시대들의 관성일 것이다.
 1990년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방자치제도는 지역주민들에게 지역의 매력을 새롭게 창출해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을 일깨워주었다. 즉 타 지역과 구별되어 존재하는 각 지역의 특징적인 속성을 발굴하고, 유지하거나 새롭게 형성해나가야 하는 과제에 직면한 것이다. 게다가 국제사회에서 문화분야에 대한 합의인 2000년의 ‘세계문화다양성 선언’과 2005년의 ‘세계문화다양성 협약’은 지역의 고유하고 특수한 문화가 인류사회의 정신?정서적 풍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가치라고 하는 ‘문화적 다양성’을 부각시켰다. 이와 함께 세계의 문화계와 시민과 정부의 관심은 특정 행정수도나 획일적인 서구형 대도시가 아니라 지역색이 있는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지역에서 지역만의 고유한 정체성 탐구는 1970년대에 공식적으로 대학에서 출발되었고, 1995년 지방자치제도의 도입과 함께 광역지자체 발전연구원 내에 지역학 연구센터로 조직화되었으며, 2010년 이후에는 기초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연구 성과물이 해당 기관에 누적되는 것만으로 자족해서는 안 되며, 연구의 맥이 끊겨서는 더 더욱 안 될 것이다. 지역학이 문화 현장에서 적극 활용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집합적 동의어인 지역주민이 자신의 근거지를 재탐색하고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공유되는 날,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민주국가를 넘어서서 주체적인 문화시민이 주역이 되는 문화도시, 문화지역, 문화국가도 꿈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역학 연구 인력이 5명 이하인 비율이 지자체의 약 80%인데, 이는 외부 연구자 및 연구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연구한다는 의미이고, 연구원 자체의 독자적인 연구사업 수행은 어렵다는 것을 말한다. 현재 지역학 중 가장 활발한 것으로 인정되는 사례는 제주학인데, 제주학은 2013년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학연구센터 설립 및 지원 조례’가 제정되어, 지속가능한 제주학 연구의 제도적 토대가 되었다. 타 지역의 지역학 연구기관들도 조례 제정을 통해 안정적인 연구와 사업이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며, 이러한 노력이 지역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기초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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