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에도 유행이 있나 싶지만 이제는 매년 유행하는 곡물을 알아보는 일은 보편적인 상식이 됐다.
잘나가는 톱스타들이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시식 사진을 올리기만 해도 매출액이 껑충 뛸 뿐만 아니라 다음해 경작범위까지 넓어진다는 우스갯 소리가 돌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유행을 넘어 식탁의 스테디셀러가 된 곡물이 있다. 바로 귀리다.
오트밀로도 불리는 귀리는 이제 여성들의 다이어트 푸드에서 건강한 식단의 주요 구성원으로 꾸준하게 사랑 받고 있다.
겨울을 온몸으로 부딪혀가며 9~10개월의 시간을 투자해야 겨우 손에 쥘 수 있는 '까다로운' 귀리에게 인생을 건 '엄마'를 만나러 김제를 찾았다. /편집자주

매끄러운 도로를 한참 지나다가 네비게이션 안내원의 목소리에 급히 유턴을 하고 들어선 논두렁.
밤새 지나간 얄궂은 태풍에 쉬이 누워버린 벼이삭들을 지나 도착한 곳은 지평선귀리영농조합법인. 그 곳에서 제2의 인생을 경작중인 '엄마는 농부' 박미라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제는 농사하기 편한 옷차림이 더 잘어울리게 됐다는 박 대표지만 처음부터 '농사꾼'은 아니었다고.
뛰어난 안목과 감각적인 실력으로 광주에서 잘 나가던 사진작가였다는 박 대표는 상업사진을 통해 자신의 커리어를 알차게 쌓아가던 '평범한' 자연인이었다고 고백한다.
광주에서 사진을 꾸준히 찍으며 그럭저럭 적당하게,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가 있었지만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인생의 지축이 흔들렸단다.
특히 아이에게 건강하고 신선한 음식을 먹이고 싶다는, 엄마로서 지극히 부릴 수 있는 욕심은 쉬이 채워지지 않았다.
고민은 길었지만 결정은 단순했다. 내 아이에게 당당하게 먹일 수 있는 농사를 짓고 싶어졌다. 그렇게 화려한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인 김제로 돌아왔다. 5년 전 일이다.
귀리를 선택하게 된 것은 순전히 아버지 '덕분' 이었다. 농사 선배였던 아버지의 도움이 절실했던 박 대표는 아버지의 적극적인 추천에 힘입어 귀리를 선택했다.
"아버지의 도움 덕에 귀리를 선택했지요. 쌀을 대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귀리 자체의 수익성도 좋았던 게 한 몫 했죠.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1kg당 2만원을 호가했으니까요."
가격이 좋았던 귀리를 선택했으니 금새 '부농'이 될 것이라고 설레였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귀리는 생각보다 '까칠'했고, 가격의 벽도 높았다.
당장 귀리에서 수익이 나오지 않아 궁여지책으로 수익성이 좋은 딸기까지 재배하게 됐다. 딸기로 얻은 수익은 고스란히 귀리 재배 비용으로 재투자됐다.
"귀리는 원래 따뜻한 남쪽지방에서만 자라는 작물이에요. 그래서 겨울이 고비인데 한국의 겨울은 혹독하잖아요? 얼어죽기도 많이 얼어죽었죠."
하지만 겨울 작물이기에 특별한 농약을 하지 않아도 쑥쑥 잘 크는 것 또한 귀리 고유의 특성이었다. 6월이면 수확기에 접어드니 이모작도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러다가 언론매체에서 귀리의 우수성이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더뎠던 생귀리 판매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물 판매로는 고소득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보관기간도 짧을 뿐더러 활용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가공에 눈을 돌렸다. 생각보다 가공의 세계는 무궁무진했고, 박 대표는 그 중에서도 분말귀리에 집중했다.
가공이 답인 줄은 알았지만 당장 직접 도전해 보는 것은 막연했다는 박 대표는 일단 OEM(주문자 상표 부착방식)으로 맡겼다.
그런데 생각보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매출이 오르는 속도를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는 직접 가공에 나서야 겠다는 의지도 생겼단다.
'엄마는 농부'가 주력했던 가공제품은 귀리볶음가루와 볶은통귀리, 그리고 인위적인 단맛이 아닌 자연적 단맛을 가미한 사과귀리가루다.
특히 사과귀리가루는 사과를 건조해 귀리가루와 7대 3의 비율로 섞어 은은한 단맛과 귀리의 고소함을 배가시켰다. 예쁜 포장은 덤이다.
"귀리의 효능은 너무 많지만 무엇보다 건강에 좋다는 데 있어요. 변비에도 좋고, 콜레스테롤이 낮아 당뇨식으로도 손색이 없죠. 특히 곡물에 유일하게 들어있는 베타카로틴이라는 비타민 성분까지 있어 그야말로 '슈퍼 곡물'로 불릴 만 하죠."
가공방식도 타 업체보다 월등하다고 자부하는 박 대표. 특히 귀리는 기름 성분을 가지고 있어 가공하기 여간 까다로울 뿐 아니라 가공 후에도 보관 방법이 잘못되면 '쩐내'가 나 먹기 거북해지기 일쑤다.
"귀리 특성상 오래두면 쩐내가 나기 때문에 이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무척 애를 썼어요. 특히, 귀리를 볶을 때 보통은 깨를 볶듯 공기에 노출시키며 볶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하면 겉은 타고 속은 안익죠. 우리는 고압으로 볶아내 맛도, 향도 놓치지 않았어요."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시장에도 진출했지만 여전히 홍보가 늘 아쉽다는 박 대표는 청년 농업인 교육 이수자들을 모셔와 전문적으로 키워 보고 싶다는 꿈도 밝혔다.
"이미 전북권에서만 12개, 서울에도 1개 매장에 진출했고 앞으로 더 늘려나갈 계획인데 납품인력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기껏 애써서 만들어 놓은 제품도 바로 출하를 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해 속상할 때도 많죠."
그렇지만 언제나 진실된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고, 귀리의 함유량으로 장난치는 일도 결단코 하지 않는다는 박 대표의 말엔 굳은 심지가 엿보였다.
이 일의 시작과 끝에 언제나 사랑하는 딸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4살 무렵 엄마와 함께 고사리손을 흔들며 김제에 정착한 귀한 고명딸은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어 너른 귀리밭을 뛰어다니며 박 대표의 바람대로 건강하게 성장했다.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귀리 미로밭'을 만드는 것이 귀농의 최종 목표라는 박 대표는 그간 농사에 치여 생각도 못하고 있던 꿈을 조심스레 펼치려고 준비중이다.
"이제 자본금 상환도 끝났구요(웃음) 구체적인 상상을 귀리밭에 펼쳐보려고 해요. 저는 엄마이자, 농부니까요."
농부였던 엄마 손에서 자랐던 박 대표가 다시 예쁜 아이의 엄마로, 그리고 농부로 우뚝 섰다. 귀리를 자식처럼 포근히 안고 카메라 렌즈 속 피사체가 된 박 대표의 미소가 어여쁘기만 하다. /홍민희기자·minihong2503@(구매문의: 지평선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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