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신문에서는 연일 수도권의 집값이 '자고 일어나면' 껑충 올라있다며 내집 마련에 대한 위기감을 조성한다.
제대로 된 직장이 없어 정든 고향을 등지고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들은 감당할 수 없는 집값과 마음 먹은대로 모아지지 않는 돈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하지만 이것은 지방에서 보면 남의 나라 이야기 같다. 지방에선 사람의 온기가 있는 집 만큼이나 '빈집'이 넘치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전국의 빈집은 141만여 호로 4년 새 32.8%나 늘었다. 특히 급격한 고령화 사회로 진입중인 전북은 시골을 중심으로 빠르게 빈집이 늘고 있다.
빈집 자체는 죄가 없지만 빈집이 늘어나면 범죄 등의 확률이 높아지면서 동네가 슬럼화 되고, 그로 인해 다시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다행히 지역에서도 빈집을 건강하게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점차 늘고 있다. 전주시 노송동에 지어지고 있는 '희희당'은 바로 그 빈집으로 만들어가는 희망의 증거다. /편집자주

70년대 전후로 지어진 구옥(舊屋)들이 밀집해 있는 전주시 노송동 일대는 첨단과 신식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전주의 발전방향에서 약간 비켜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돌지만, 그만큼 낙후되어 있기도 해 이곳을 떠나는 사람들도 점차 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노동송의 빈집을 찾아 리뉴얼하고 보존해 오던 일을 해오던 Art cluster 별의별 고은설 대표는 전주시사회혁신센터의 지원을 받아 과감한 도전을 시도했다.
바로 '청년, 전주 일년 살기'. 행정안전부에서 지원을 받아 진행되고 있는 목포의 '괜찮아 마을'도 빈집자원을 활용해 청년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지만 아예 빈집에서 청년들이 눌러살며 의식주를 해결하진 않았다. 전국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도전이다.
전주에서 일년을 살게 될 청년들이 살 집의 이름은 '희희당'. 이름 그대로 기쁘고 기쁜 공간이다. 전주의 참 매력을 알아가면서 동시에 같은 시기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모여 고민을 털어놓고, 같이 사는 것을 넘어서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만드는 공간으로 꾸미겠다는 각오다.
고은설 대표는 "사람이 살지 않다 뿐이지 그대로 두기 너무 아까운 빈집들을 활용하고 싶은 방안을 찾다 청년들의 일년 살기를 기획하게 됐다"며 "청년들을 구할때도 단순히 집이 필요한 사람이 아닌, 내가 누군지 알아가고 싶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래되고, 비어있는 주택과 주거 안정을 필요로 하는 1인 가구 청년층을 매칭해 사생활 보장을 해줌과 동시에 주택 내 커뮤니티공간을 조성해 전주형 커뮤니티 쉐어하우스의 프로토타입이 개발된다면, 구도심의 저층주거지의 유휴공간의 활용도도 높아지고 청년층의 인구유입에도 상당한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게 고 대표의 주장이다.
특히 '희희당 프로젝트'는 단순히 빈집에 눌러 앉아 베짱이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희희당에서 살아보고자 지원한 청년들이 낡은 집을 손수 고쳐가며 자신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정체성을 담은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데 의의가 있다.
실제로 취재를 갔던 날에도 청년들과 인테리어 관계자들이 한데 뒤섞여 페인트를 바르고 폐자재를 치우는 등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청년들은 전주에서 일년 살기를 앞두고 희희당과 관련한 기획부터 디자인, 설계, 시공까지 모두 직접 나섰다.
우선, 청년들이 거주할 집을 발굴하는 게 급선무였는데 그간 노송동에서 꾸준히 빈집재생에 공을 들여온 고 대표의 힘으로 적당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아무리 청년들이 발벗고 집수리에 나선다고 해도 이들은 '아마추어'다. 전문가의 손길이 절실했다. '주민 집수리단'을 발족했다. 동네에서 설비나 전기, 도배, 페인팅, 타일 등 집수리 경력이 있거나 집수리 교육이 가능한 주민을 모시고 하나부터 열까지 쌓아 올려갔다.
청년들은 동네 주민들과 함께 상생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 동네 주민들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성격의 워크숍을 비롯해 각 주택별로 거주자를 매칭해 주택 상황을 진단하고, 공간기획과 집수리도 함께 진행해 나가고 있다.
이렇게 완성된 집에서 건물주와 청년들은 1년 무상임대계약을 통해 1년 간 동네 주민으로 살아가게 된다.
맞다. 이 사업은 말그대로 '실험'이다. 실험의 결과는 어느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실험을 하는 동안 어떤 돌발상황이 벌어질 지도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실험만큼 우리가 공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냉철하게 바라볼 기회도 없을 것이라는 게 고 대표의 설명이다.
"여전히 우리사회는 공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공간을 부동산으로만 보는 사람들에겐 이 일이 무모해보일 수 있겠지만 이번 시도가 청년들에겐 안정적 주거공간이 주는 위안을, 사람이 떠나는 동네에겐 청년들의 활기를 모두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봅니다."
지난 7월 공고를 통해 모집된 청년은 총 4명으로 지난해 있었던 '전주 한달 살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년 2명과, 말 그대로 전주에 살아보고 싶어 큰 결심을 한 2명의 청년이 그 주인공이다.
강원도 원주에서 이번 프로젝트 공고를 보고 무작정 지원하게 됐다는 김경은(37)씨는 전주를 여행으로도 방문해 본 적 없는, 말그대로 낯선 이방인이다.
그랬던 그는 9월과 10월 두달에 걸쳐 공간 워크숍과 관계 워크숍을 통해 이번 프로젝트의 취지를 다시한번 상기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김 씨는 "내가 살 공간을 하나부터 열까지 고쳐나간다는게 처음이라 힘들긴 하지만 나중엔 이 힘듦 마저도 추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희희당이 단지 거주지로서의 의미를 넘어서 실험이 끝나더라도 뜻 있는 청년들이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이 되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취재를 하는 동안에도 동네 어르신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며 공사는 잘 되어가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으며 청년들과 다정한 대화를 이어갔다. 이미 이 실험의 반은 성공인 듯 하다. /홍민희기자·minihong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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