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같이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분초를 다투는 바쁜 세상 속에서 내 몫을 챙기기도 어려운 세상이라지만, 이웃과의 상생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고향인 정읍에서 여주 가공업을 통해 바람직하고, 믿음직스러우며, 정직한 길을 걷고 있는 조형남 단비원 대표를 만나봤다. /편집자주

여주는 못생긴 외모와는 달리 신의 선물로 불린다. 특히, 당뇨 환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혈당조절에서 탁월한 효능을 보이기 때문에 쓴 맛과, 못생긴 외모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건강식으로 많이들 찾는 과실이 됐다.
하지만 위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쓴 맛이 강한 탓에 생으로 먹기 보다는 환이나 즙 등으로 가공해서 먹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소비자들의 기호를 살피며 꾸준하게 여주 가공사업을 펼치고 있는 조형남 대표는 매사 진지한 태도와 꾸준한 노력으로 사업을 키워나가고 있는 젊은 농부다.
처음부터 농부의 삶을 살진 않았다. 농사일을 짓는 부모님을 보며 자랐지만, 그 길이 고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부모님의 조언으로 번듯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정읍의 첨단방사선연구소에서 시설관리일을 7년 넘게 착실하게 해 오던 그가 다시 농사꾼으로 돌아온 건 부모님의 근심 때문이었다.
"언제나 성실하고 근면하셨던 부모님이신데 노력에 비해 제값을 받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고생을 덜어드리고 싶었죠."
애써 여주를 기르고도 판로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부모님의 모습에서 오히려 자신의 미래를 엿봤다는 조 대표는 고민 끝에 직장을 그만두고 여주 농사를 위해 팔을 걷어부쳤다.
여주를 제대로 팔기 위해선 먼저 자신이 몸소 겪어봐야 한다고 느낀 조 대표는 6개월간 열심히 여주를 먹으며 공부했다. 확실히 배뇨기능이 원활해지고 생기가 도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생물은 쉽게 무르는 등 보관이 용이하지 않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필연적으로 가공에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가공을 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여주의 효능을 체감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있었다.
가공은 쉽지 않았다. 재배기술과 날씨 등 변수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여주는 7~8월에 수확하는데 이땐 장마철도 겹쳐 건조부터 난항을 겪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건조하면 가공을 안하니만 못한 상황이라 조 대표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여주 가공이라는 것이 그냥 햇볕에 말리면 되는 것이 아니어서 시간대와 건조 온도까지 5단계로 거쳐 완벽한 건조를 해냈죠."
조 대표의 소신은 간단하지만 가공업의 핵심을 놓치지 않았다. 바로 가공품이 먹기 편해야 하고, 오래도록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소신이다.
특히, 몸이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가공의 처음과 끝엔 신뢰와 정직이 필수라는 것.
본격적인 여주환을 개발하기 위해 시중의 환 제품들을 모조리 살펴봤다는 조 대표는 지나치게 크기가 큰 환과 찹쌀가루 등을 섞어 단가를 떨어뜨리는 환들을 보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실망감 속에서 자신만의 갈 길도 찾았다. 환 크기가 커서 먹기 어렵다면 크기를 반 가까이 줄여 남녀노소 누구라도 쉽게 삼킬 수 있게 개발하면 됐고, 품이 더 들더라도 100% 여주로 환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생긴 것이다.
"소비자가 제품을 먹는 것이 곤혹스러워지면 절대 판매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마케팅도 중요하지만 일단 제품 스스로가 고객에게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고생 끝에 탄생한 제품을 비싸게 받고 싶은 것은 모든 사업가가 꾸는 꿈일것이다. 하지만 조 대표는 여주환을 섭취하게 될 고객의 특성을 먼저 생각했다.
"제품이 비싸면 당연히 저는 돈을 벌겠지만, 여주환을 구매하는 분들은 대부분 당뇨 환자들입니다. 당뇨는 서민병이라고 불릴만큼 보통 사람들이 많이 걸리는 병이라, 과한 가격은 피했습니다."
5mm의 크기는 목에 걸리기도 쉬워 조 대표는 기계까지 새로 공수해 3mm로 환 크기를 줄였으며, 찹쌀가루를 섞지 않고 초록빛이 감도는 여주가루만으로 100% 여주환을 개발해냈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구상할 때 전북농업기술원에서 지원하는 지역 특색농업 발굴 소득화 사업에 선정되는 기쁨을 안았다. 지원금 1억 원으로 분말가공 분쇄기부터 스틱포장기, 병포장기 등 마케팅에 필요한 포장시설을 갖췄다.
가공공장을 세우면서 주변을 둘러보게 됐다는 조 대표는 예전 자신의 부모님이 그러했듯이 동네 어르신들이 애써 일군 아로니아나 여주 등을 활용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외면하지 못하고 함께 가공일을 돕고 있다.
혼자 잘 사는게 무슨 의미냐는 조 대표의 나긋한 답변에 그의 진심을 엿볼 수 있었다.
조 대표는 발걸음을 멈출 생각이 없다. 중국에서 넘어온, 번데기 모양의 초석잠도 스낵처럼 만들어 한창 두뇌발달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영양간식을 만드는 일부터 식초를 만드는 일까지 조 대표가 꿈꾸는 가공업의 세계는 무한팽창 중이다.
"제가 사업의 모토로 내걸고 있는 말이 '바람직한, 믿음직한, 정직한'인데 이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좋은 제품도 나올 수 있겠지요?"
조형남 대표가 창조해 낸 작고 푸르른 여주환 한 알이 결코 작아보이지 않는 건 그의 따뜻하고 원대한 꿈이 함께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홍민희기자·minihong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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