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은미 국민연금공단
 
 설거지를 마치고 손을 닦는데 큰아이가 이것 좀 보라며 팔을 내민다. 살갗이 온통 선을 그어 놓은 듯 부풀어 올라 있다.
 “어머 이거 왜 이래?”
 “나도 잘 모르겠어. 얼마 전부터 긁으면 이렇게 돼.”
 그러고 보니, 얼굴도 울긋불긋하다. 아이의 얼굴은 걱정이 가득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아이의 증상은 ‘묘기증’이었다. 피부 알레르기이다. 피부에 글자를 쓰면 글자 모양대로 부풀어 오를 정도였다. 과거 소아과에서 아이가 알레르기성 비염이 심하다며, 알레르기가 한 가지 있다는 것은 수백 가지의 다른 알레르기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나는 집안이 건조해서 그런가보다 싶어 한동안 아이의 보습에 신경을 썼다. 저녁마다 아이 방에 가습기로 습도를 조절하고 로션도 아토피에 도움 되는 촉촉한 타입으로 바꾸어 주었다. 그리고 야채를 많이 먹게 하고 물도 자주 마시게 했다. 가루음식을 줄이고 밖에서 컵라면도 못 사먹게 했다. 아무튼 최선을 다해 아이의 피부에 신경을 썼다. 사실, 바로 피부과를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피부과 약이 독하다는 편견이 있어 자연스럽게 낫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2주가 지나도 아이의 피부는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아이가 사춘기라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쓸 때인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싶어 속이 이만저만 상한 게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친정에 다녀올 일이 있어 친정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말린 어성초를 한 봉지 주셨다. 어성초는 살균작용이 있어 한약의 재료로 쓰인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시킨 대로 끊인 어성초 물을 욕탕에 넣은 뒤, 몸에 담그게 했다. 약기운이 줄어들까 봐 간단하게 몸만 닦고 잠을 자게 했다. 그리고 면역력에 좋다는 유산균도 먹였다. 며칠 동안 어성초를 삶은 물에 몸을 담그니 아이는 가려운 게 없어지고 잠도 편히 잔다고 했다. 나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부모가 되고 보니, 자식은 참 이렇게 애가 닳는 존재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나는 부모님의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내가 어릴 적에도 어머니는 바쁜 장삿일에도 입 짧은 큰 딸을 위해 7첩 반상을 차려주셨다. 아버지는 아침을 먹지 않으면 학교 못 간다며 협박하며 무서운 척 하시며 아껴주셨다. IMF 시절에 어려워진 살림이라 겨우 대학등록금을 마련해 주시면서도, 어려서부터 험한 일하면 평생 고생한다며 아르바이트도 못하게 하셨다.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몰랐던 미련한 나는,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깨달아가고 있다.
 아버지는 여전히 장사를 하신다. 새벽에 나가서 밤이 늦어서 들어오신다. 아버지는 손자 손녀들이 대학에 가면 첫 등록금과 양복 한 벌을 해준다며 저축을 하고 계시고, 어머니는 국산 참기름을 짜주시고 계절마다 맛있는 찬거리를 챙겨 주시기도 한다.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을 받을 때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리 사랑이라고 했던가. 자식에게 쏟는 사랑의 반만큼이라도 내가 부모님께 해 드렸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을 때면 죄송한 마음이 든다. 오늘은 찬거리를 가지러 갈일이 있어 집에 들렀다. 아버지에게 어성초를 끊인 물에 씻겼더니 피부가 말끔해졌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 자신은 척척박사라며 내 말만 잘 들으면 뭐든지 다 해결 된다며 ‘허허’ 하면서 호탕하게 웃으셨다. 앞으로 일이 생기면 무조건 도와 줄 테니 상담을 하라고 하신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들에게 어성초 얘기를 했다. 할아버지 덕분에 네가 나았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할아버지에게 자주 인사드리고 살갑게 대하라고 당부를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 장학금 받으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된다며 으름장도 놓았다. 자리에 일어서는데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내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아이는 자기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부엌으로 간다. 나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어설프게 설거지하는 뒷모습이 왠지 든든해 보였다. 설거지를 마친 아이는 고무장갑이 안 벗겨진다며 커다란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참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가까이에 사랑하고 아껴주는 부모님이 계시고, 사춘기에 말썽 없이 10대를 보낸 속 깊은 아들이 있고, 나누고 의논할 수 있는 가족이 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은 가까이 있다.’ 라는 말을 되새겨보는 겨울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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