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2019년 12월 중순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매일 매일이 기적 같은 선물이라고 느끼거나 그렇게 최면을 거는 사람에게도, 혹은 그 똑같은 매일에 대해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견디어낼까 하며 뭔가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도 12월은 이미 다가와 있다. 사람은 때로는 아니 거의 대부분, 평생 추구해마지 않는 사랑에 대해서까지도 무의식 중 계산식을 넣어 계산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12월에는 거의 예외 없이 1년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본다. 과연 일 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질문을 시작으로 어떤 관계가 형성되었는가. 어떤 발전이 있었는가. 최소한 어떤 경력이 쌓였는가. 통장에 잔고는 얼마나 남아있는가 등. 그래서 결국 내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계획에 다다르게 된다. 
 한 도시도 1년을 결산한다. 2019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어떤 측면에서 도시는 발전했으며, 어떤 부분이 제자리걸음이었고, 어떤 부분은 문제였다가 해결되었고,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은 것은 무엇인지 등.
 이때 도시의 결산은 개인보다 복잡하다. 왜냐하면 도시는 도시의 인구규모와 역사적 궤적에 따라 내부 시선과 외부 시선이 교차하고, 행정과 민간 간에 기대와 평가의 차이가 나타날 수 있으며, 시민들이 추구하는 물질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가 대립할 수도 있고, 도시의 중심과 주변 시민들의 삶의 양과 질이 다를 수 있을 뿐 아니라, 계층에 따른 편차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계급이라고 하는 과거의 망령은 공식적으로나 인식적 차원에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소득, 직업, 성별, 연령, 출신, 학벌과 학력, 전문성 등에 따른 차이와 함께 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의 결산은 체계적이고 세부적인 기획과 함께 거시적인 안목에 미시적 탐색이 결합될 때만 가능하다.
 전주라는 도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측면을 감히 짧은 지면에서 거시적으로 바라본다면, 2019년에 발전했거나 유지한 것은 정책의 소통과 독서 및 복지 수준의 향상, 대외적인 문화도시 이미지 등이고, 여전히 해결을 기다리는 문제는 관광요소의 작은 변화와 응용, 일자리 및 일거리의 창출, 그리고 도시의 내밀한 품격 그 자체인 예술계의 지속적 지원과 대외적 활동력 강화, 그리고 시민들의 진정한 예술향유와 그를 통한 삶의 만족도 증진이다. 
 미시적 과제로는 의회와 행정의 시민에 대한 서비스의 질적 측면에서 거칠고 투박한 면은 버리고, 세밀하고 친절하고 정직한 측면은 지켜가야 하며, 독서와 복지 수준에서 공감능력을 심화시키려는 프로그램들도 지켜나가야 하고, 예술계는 각자의 예술세계에 대한 지독한 천착들이 소리 없이 이루어져 도시의 이곳저곳에서 예술이 작은 야생화처럼 피어날 수 있도록 실천력을 지켜내야 한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도시들이 동일하게 겪고 있는 중앙 의존적 현상을 탈피할 수 없다면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그 열매는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과감한 교류를 통해 같이 나누는 지혜가 필요하다. 특별히 경제력을 구비한 시민들은 의도적으로 책과 예술품을 최소한 먹는 것만큼 구입하는 움직임에 동참하기를 권유한다. 무료공연에 익숙해져서, 사람 냄새가 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인정하기보다 공짜 티켓이나 무료 세상만을 기대하는 관성에 젖어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관성을 버린다면, 그리고 내가 소비하는 유료 예술이 전주의 예술가 그 누군가 한 사람에게는 생명과 소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소비해나가는 삶의 방식을 지켜나간다면, 전주는 예술이 가득한 도시가 될 것이다.  
 특히 한 예술가가 지원받는 것에 대해서 아낌없이 박수를 치고, 상대적으로 자신이 다소 뒤로 빠지는 것에 대해서도 좌절 못지않게 여유를 부리는 모순된 노력도 계속 지켜가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 만이 모든 혜택을 독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때의 노력들이 글과 그림, 혹은 음악으로 남겨진다면 그렇게 응원하고 양보했던 역사들이 새롭게 주목되는 시간들은 분명 돌아올 것이다.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 늦더라도 순번이 돌아오는 것, 그것은 삶이 가르쳐 준 자연법칙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베토벤은 자신의 음악작품에 대한 자평을 이해하지 못하는 악평에 대해서 ‘파리가 쏘는 것쯤으로는 내달리는 말을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1826년에 썼다. 2019년 전주와 우리 자신의 발전을 도모해주기 위해 발화된 의미 있는 비평들은 소화하여 흡수하되, 진정한 비평을 가장하여 자신의 불만족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심술이 고인 비평들에 대해서는 파리의 화살로 여기는 여유도 꾸준히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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