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발길 닫는 곳이면 안 걸어본 길이 없는 문화사학자 신정일. 독립저술가로도 왕성한 글쓰기를 보여주며 많은 저서를 펴내고 있다. 최근 <신정일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푸른영토)를 펴낸 신정일은 내년 초 <암자 답사기>도 선보일 예정이다. 13일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택리지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
  <택리지(擇里志)>는 1751년(영조 27) 실학자 이중환이 현지 답사를 기초로 하여 저술한 우리나라 지리서. 지난해 10월 이 책을 새롭게 구성한 <신정일의 신 택리지>(샘앤파커스)시리즈를 출간하기 시작해 내년 봄 시리즈 11권 모두를 펴낼 예정이다. ‘국토교과서’라 할 수 있는 택리지를 일별하는 박물관에 대해 욕심을 숨기지 않는 그는 자신의 뿌리가 있는 전북에 택리지박물관이 들어서는 날을 기다린다.
  “이제까지 내 이름으로 출판된 책이 90여 권이다.”
  그는 ‘독립저술가’다. 글을 쓰고, 책으로 펴내고, 책이 판매되면 정해진 인세를 받아 생활하는 저술가다. 거실 벽을 두르고 있는 책꽂이의 상당 부분이 자신이 쓴 책이다. ‘쌓아 놓으면 한 길이 넘는다’는 그의 표현이 과하지 않다. 내년에는 <신정일의 신 택리지> 완간과 함께 <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도 신경윤 같은 인물을 보완해 다시 펴낼 계획이다. 특히 <느낌은 언제 오는가>(가제)도 빼놓을 수 없다. 다작이면서도 삶의 깊은 이치를 놓치지 않는 글쓰기 힘은 어디서 생기는지 확인할 수 있다. 
  “내가 길이 문화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다. ‘길이 문화재?’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많은 역사적 옛길이 문화재가 되고 명승이 되었다. 2007년 경북 문경새재, 경북 죽령옛길, 강원도 구룡령 옛길이 지정됐고 이후 정읍갈재, 무주 부남 벼룻길 등이 명승으로 지정됐다. 변산 마실길, 소백산 자락길, 전주 천년고도 옛길을 만든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에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문화재청에서는 옛길을 문화재로 지정해 많은 사람들이 걷도록 하려고 한다.”
  대한민국의 길과 강을 모두 걷고 기록한 그의 이력은 그를 문화재청이 문화재 위원으로 특채하는 배경이 됐다. ‘날고 긴다는’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되고 싶어 하는 자리지만 아무나 갈 수 없다는 그 위원이 됐다. 길 문화의 선구자인 그가 무형문화재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내년에 건지산을 ‘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하기 위해 전북도와 전주시, 전북대와 힘을 모으겠다.”
  그는 산림청 ‘산림문화자산’ 심사위원이다. 직소폭포와 위봉폭포가 지정받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가 건지산을 산림문화자산으로 꼽은 이유가 있다. 조선 왕실의 뿌리를 품은 조경단이 있고 1970년 중반 민관식 문교부장관의 식수가 있을 만큼 체계적인 관리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생태계를 보전하고 있는 건지산은 산림문화자산 가치가 있고 이를 통해 그 위상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보면 언제 걷고, 글은 언제 쓰느냐고 종종 묻는다. 나는 걷는 시간외에는 대부분 글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 걷고, 걷으면서도 글을 생각한다.”
  출판사의 권유로 시작했다는 그의 페이스북을 보면 말 그대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그와 인터뷰 도중에도 토요일 14일 한강길 일정을 묻는 전화가 울렸다. 그가 대표로 있는 ‘길위의 인문학 우리땅 걷기’에서 지난 2월부터 11차례에 걸쳐 진행한 천삼백길 한강길(태백 검용소~김포 보구곶리)의 마지막 일정을 문의하는 전화다. 15일 오후 그의 페이스북에 게시글이 떴다.
  “천 삼 백리 한강의 하구 김포시 월곶면의 보구곶리에서 열한 달에 걸쳐 진행한 한강도보 답사를 마치고 완주한 도반들에게 인증서를 주었다.…(중략) 2020년에는 영산강, 한탄강, 남강이 우리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강은 얼마나 많은 변화 속에 자리매김하고 있을까,”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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