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국민연금공단
 
계란 한 판을 받았다. 시장에서 산 계란보다 작은 계란이다. 계란 한 판에 구멍이 하나 있으니 정확히 말하면 한 개가 부족한 한판이다. 고향에서 콜벤 사업을 하는 친구 집에 노트북 수리를 하러 갔다가 오면서 받았다. 손재주가 좋은 그는 콜벤 사업에 컴퓨터 수리와 택배까지 하고 있다. 대도시에서 살다가 귀향하여 시골에 살고 있는데 시골에서도 수입은 제법 쏠쏠하다고 한다. 토종닭을 취미로 기르고 있는데 며칠 동안 모아둔 계란을 내게 준 것이다. 계란 한판을 받았는데 쇠고기 열 근 정도는 받은 기분이다.
 
오늘 저녁을 먹고 늦은 밤에 친구 집을 찾았다. 부모님 댁에 가는 길에 친구에게 고장이 난 노트북을 수리를 하기 위해서다. 퇴근 무렵에 인사발령이 있어 약속시간보다 두 시간이 늦었다. 그는 노트북을 수리하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다며 조금 기다렸다가 가져가라고 했다. 프로그램이 깔리는 동안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소한 이야기였다. 산속이라 다른 지역보다 춥다는 이야기, 직장이야기, 친구이야기, 부모님 건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트북 수리를 마치고 자리에 일어났다. 그는 아직 저녁식사 전이란다. 내가 퇴근 무렵에 노트북 수리하러 간다고 전화를 했었다. 그는 전화를 받고 나와 함께 식사를 하려고 기다렸는데 내가 늦게 도착하여 아직 저녁식사를 못하고 있었다. 근처 식당에 가자고 했더니 시골 식당은 8시 이전에 문을 닫는다며 집에 가서 식사를 하겠다고 했다.       
 
노트북 수리를 마치고 함께 사무실을 나오는데, 그는 잊은 것이 있다며 사무실을 다시 들어갔다. 내게 잠시만 기다리라는 것이다. 잠시 뒤, 그는 내차 조수석 문을 열더니 계란 한판을 내려놓았다. 도시에서 산 계란보다는 좋은 것이라며 나 먹지 말고 어머니께 갖다 드리란다. 그리고 친구는 잘 가라는 인사와 함께 차문을 닫았다. 내가 고맙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차 뒷모습만 보이며 쏜살같이 자기 집으로 늦은 식사를 하기 위해 달려갔다.  
 
오늘 어머니는 병원에서 퇴원을 했다. 어머니는 자주 입원을 하셔서 친구도 어머니의 병환을 알고 있다. 어머니는 13년째 혈액암과 동행을 하고 있다. 완치가 불가능한 질병이라 암을 없애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암을 달래가며 살아가고 있다. 평생 암과 함께 할 것 같다. 어머니는 병세가 악화되면 입원을 하셨다고 조금 나아지면 퇴원을 수십 차례나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암 투병을 한지 10년 이상 지났는데도 처음 진단을 받은 때와 차이 없이 이럭저럭 생활하고 계신다. 혼자 거동도 하시고 아버지의 식사도 챙겨 주실 정도는 된다. 친구도 이런 어머니를 잘 안다. 가끔 지나는 길에 어머니를 뵈면 시골집까지 모셔다 주기도 했다.
 
부모님 댁으로 가는 마음이 편했다. 어머니의 건강이 회복된 이유도 있지만, 오늘 받은 계란 한판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퇴근을 하면서 반찬거리 하나 사지 않고 그냥 부모님 댁에 가는 길인데, 조수석에 실려 있는 계란 한판 때문에 마음이 훈훈하다. 어쩌면 훈훈한 마음이 어머니의 병환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직 그리 깊은 밤도 아닌데 부모님의 방은 불이 꺼져 있었다. 큰 기침을 하고 부엌을 통해 부모님의 방문을 열었다. 아직은 주무시지는 않고 있다. 아버지는 불면증이 있는 어머니와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친구가 어머니에게 계란을 보내줬다는 말을 전했다. 어머니는 ‘받아도 되나’ 하면서 고마워했다.
계란을 냉장고에 넣기 위해 불을 켰다. 어둠속에 보았던 계란이 환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시중에 나오는 계란보다 작았다. 중간 중간에 검은 점이 있었고 볼품은 없어 보였지만 형광등 불빛에 반짝거렸다. 시중에서 산 비싼 계란보다 더 빛나보였다.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시골집 마당에 섰다. 소백산맥 중턱에 있는 고향 마을은 역시나 춥다. 하늘을 보았다. 고향의 별은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다. 몸이 추워 떨렸지만 고향 탓에 친구 탓에 마음이 따뜻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한 고향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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