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이 옷자락을 펼치며 노니는 듯 무리지어 있는 섬! 고군산군도는 과거와 현재 나아가 미래를 연결해 주는 시간박물관이며 보물창고이다. 지정학적 위치로 역사이야기가 시대별로 가득하다.
 세계 최장 길이 33.9km 새만금 방조제가 개통 된 후 연륙교까지 완성되면서 섬 전체를 차로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비응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섬으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달리다보면 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바다색이 확연히 다르다. 오른쪽은 바다는 검푸른 파랑에 부딪히는 햇빛으로 생기가 넘친다. 하지만 방조제로 갇힌 왼쪽의 바닷물은 움직임이 없어서 숨이 막힐 것 같은 탁한 어두운 색이다.

 신시도에 도달하기 전 야미도를 지난다. 밤나무가 많아서 밤섬이라고 불리었던 섬인데 발음이 저녁을 의미하는 밤과 같아서 밤야(夜)자를 써서 야미도라 했단다.
 야미도를 지나 방조제의 버팀목이 된 신시도에 이르면 누구나 지나치기 쉬운 병풍바위가 손님을 맞이한다.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넓은 섬인 신시도는 심리 또는 신치라고도 불렀다. 심리는 깨달음을 위해 마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는 뜻이고 신치는 깨달음이 높이 치솟았다라는 뜻이다. 둘 다 최치원과 관련이 있다. 신시도를 이루는 대각산과 월영봉도 있다. 대각산은 최치원이 크게 깨달음을 이루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월명봉은 최치원이 가야금을 켜면서 놀았고 그 소리가 중국까지 들렸다고 한다. 가을이면 장관을 이루는 붉은 단풍이 푸른 바다색과 잘도 어울린다. 신시도 월영봉을 가을빛으로 타오르게 하는 월영단풍은 선유팔경의 시작이다.

 고군산군도에서 하루를 머물다 보면 선유팔경 속 신선이 된다. 해질녘 바다 위를 붉은 금빛으로 물들이는 선유낙조와 선유해변의 고운 모래 띠 명사십리, 망주봉 앞 바다에 기러기가 날개를 편 듯한 모래톱 평사낙안, 여름철 비가오면 살아나는 7개의 물줄기 망주폭포, 저녁녘이면 몰려드는 조기의 퍼덕이는 몸짓이 꽃과 같다해서 붙여진 장자어화, 병풍처럼 펼쳐지는 열 두 봉우리 무산십이봉, 세 개의 섬이 마치 만선으로 집에 돌아오는 듯 푸근한 전경인 삼도귀범을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고군산군도는 그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생겨진 역사적 사건들로 역사스토리텔링이 가득하다. 선사시대부터 중국 또는 일본을 오가기 위한 바닷길이었기 때문이다.

 한나라 유방에서 쫓겨 망명길에 나선 제나라 전횡장군은 3일 동안 항해 끝에 만난 섬을 하도 반가와 어청도 라고 했다한다. 그들은 초기철기기술을 가져왔고 군산대 곽장근 교수에 의하면 그 기술이 육지로 이어져 완주를 거쳐 장수까지 이르는 아이언 로드를 형성하는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고려는 송과 친선관계를 유지했다. 예종이 죽고 인종이 등극하니 애도와 축하를 동시에 하려고 송은 국신 서긍을 고려에 보낸다. 서긍은 신주호를 타고 500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고려에 온다. 중국 명주에서 출발한 서긍 일행은 흑산도를 거쳐 고군산군도에서 잠시 머물다가 개경에 이른다. 서긍은 오고가는데 걸리는 60일 그리고 고려에서 머무는 30일 동안 여행기록문인 <선화봉사고려도경>이라는 책자를 쓴다. 고려에 머문 30일 중 20일 정도를 선유도에 머문다. 그 당시 풍경을 그림과 함께 자세히 묘사해 놓았다. 망주봉 아래에는 숭산행궁이 있고, 군산정, 객사, 오룡묘가 있었다. 접반사였던 김부식은 송방이라는 채색 배를 타고 서긍을 맞이하러 왔다고 적혀있다. 잔치 중에 행해졌던 풍습과 먹거리 그리고 사용되었던 기구들을 상세히 적어놓아 고려시대를 알 수 있는 귀한 자료로 남아있다. 그 당시 고려의 국제관계를 살펴볼 수 있고, 앞으로 중국과의 문화관광교류 차원에서도 고군산군도는 귀한 장소성을 갖고 있다.

 고군산군도는 전설과 설화가 풍부하다. 신시도에는 최치원과 관련 된 되내기 샘 설화가 있다. 하늘에 은하수가 샘으로 내려와 감로수가 되었는데 그 샘물을 먹고 최치원이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논 가운데 솟아나는 샘이지만 농부들은 샘을 풍류를 말한 최치원과 연결시켜 고단한 섬 생활을 멋과 소망으로 승화시켰던 것 같다.

 선유도 명사십리의 끝자락에 이르면 커다란 봉우리가 두 개 있다. 멀리서 보면 코끼리가 엎드려 있는 모습과도 같다. 두 부부가 섬으로 유배를 와서 임금이 불러주길 애타게 기다리며 주인이 계신 한양을 바라보다 돌이 되어버렸다는 망주봉이다. 유배지였던 고군산군도에는 이외에도 왕과 관련된 설화들이 많다.

 임씨 할머니 설화도 그렇다. 나이 들어서 낳은 딸아이가 왼쪽 주먹을 펴지 않고 성장했는데 결혼할 나이가 되어 평범한 남자에서 중매로 결혼을 시키려 하니 결혼식 전날 행방불명이 되었다. 자결한 채로 발견되었고 주먹이 펴 있는데 손바닥에 왕비라는 글자가 써 있었다고 한다. 왕비가 될 운명이었는데 그 운명이 어긋나려는 순간 생을 마감한 것이다. 마을에서는 임씨 할매 사당을 짓고 제사를 드리고 있다. 

 장자할매 설화다. 장자도를 가기위해 장자교를 걷너다보면 대장봉 옆구리에 장자할매 바위가 어 있다. 장자할매는 남편이 공부를 좋아해서 자신을 희생하며 뒷바라지를 많이 해줬다. 한양에 갔던 남편이 과거에 급제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고 밥상을 차려들고 맞이하려 갔는데 남편의 뒤를 따라오는 여자가 있어 속상한 나머지 순간 돌이 되어버렸다. 마주오던 남편과 남편을 따라오던 식솔들도 졸지에 돌이 되어버렸다. 돌이 되어서 지금도 제자리에 서있다. 장자할매 바위와 장자할배 바위 전설이 바닷바람에 실려 오고가는 뱃사람과 섬사람들 마음에 돌처럼 박혀졌고 지금껏 전해져 오고있다.

 조선 후기 떠도는 예언서 정감록에 군산 앞 다바를 ‘퇴조 300백리면 범씨 천년 왕국’이라는 글귀로 예언하고 있다. 시방 새만금방조제가 만들어져서 바닷물이 300리 이상 육지에서 물러났다. 그렇다면 범씨가 천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다는 말인가? 여기서 범씨란 범인 즉 민중들을 말하는게 아닐까? 인간의 뇌는 빈곳을 보면 메우려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빈 생각을 정보로 채워서 문제해결을 하며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즉 생존 본능이다. 생각만이 아니다 빈 공간이 있으면 무엇인가로 채우려고 한다. 이제 새만금 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여의도의 140배 면적의 땅이 드러난다. 그곳은 들풀 같은 범인들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상생의 땅이 될 것이다.

 어찌보면 우리 모두는 군산이다. 우리네 삶은 산의 특성을 닮았다. 우뚝 솟은 산처럼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 가파른 삼처럼 인생길이 굽이굽이 험난한 사람, 높기는 하지만 바위로 뭉쳐있어 아무런 생명이 살 수 없는 산과 민둥산과 같은 사람, 낮고 구릉진 산이지만 많은 생명을 품은 산과 같은 자 등등 삶의 모습이 마치 산과 같다. 또 살펴보면 각각의 산과 산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있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무리지어 있는 산, 군산!

 군산(群山)이라는 이름이 시작된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는 군산이 동북아시아를 지나 세계로 뻗어가는데 허브 역할을 할 시간박물관이면서 자연이 빚은 보물창고이다. <끝>
/문정현 사단법안 아리울역사문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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