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심 문화심장터의 핵심공간인 전라감영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 부단히 노력을 기울여 온 이들이 있다. 바로 ‘전라감영 복원 재창조위원회’(이하 위원회)다. 위원회는 역사·고건축·조경·문화콘텐츠 등 전문가와 전주시의회 의원, 지역주민, 시민단체, 관계 공무원 등 총 19명으로 구성됐다.

위원회는 민선6기부터 시작해 3기째를 맞았다. 특히 올해는 전라감영 선화당을 비롯해 관풍각, 내아, 연신당 등 핵심건물이 준공된 해로 제3기 전라감영 복원 재창조위원회가 전라감영의 역사성과 정체성이 살아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데 방점을 찍었다 표현해도 무색하지 않다.

이들 위원회는 △전라감영 재창조 복원 공사 발주 및 착공 △공간 활용 계획 및 실감형 콘텐츠 제작 △추가 발굴조사 △상량식 △흔적남기기 △전라감영 복원 공사 준공식 △다큐멘터리·종합보고서 제작 △감영 관련 유물 구입 등 그간 심도 깊은 논의를 이어왔다.

공정률 90여%, 내년 3월이면 준공을 앞둔 가운데 위원회를 만나 전라감영 복원이 갖는 의미와 앞으로의 활용 방안, 그간의 활동 소회 등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편집자주>

 

*참석자=남해경 전북대 교수, 엄혁용 전북대 교수,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 이재운 전주대 교수, 황권주 전주시 문화체육국장(가나다 순)

*사회=권순재 사회부 기자

 

△권=전주의 도시발전 방향에서 전라감영 복원은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선결 과제가 있는지 고민하는 자리다. 먼저 감영복원 복원이 갖는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남=위원회 활동 초기 이곳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있었다. 이유는 이 지역이 도청이 이사를 가고 난 후에 밤 8시만 되면 도시가 암흑이 되는 즉, 죽어있는 도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이 건물을 복원하면 밤에는 영원히 죽은 도시가 된다는 것이었다. 일리가 있는 얘기다.

처음 전라감영을 복원하자는 목적 중의 하나도 도시재생과 도시 활성화였다. 그렇지만 이전에 복원된 감원감영을 비롯한 다른 감영이 있는 도시에서 감영을 복원했지만 도시가 활성화되지 못했다. 전라감영 역시 특별한 노력 없이는 단순한 역사적인 건물의 복원에 불과할 따름이다.

위원회는 감영 복원 전처를 밟은 다른 도시 사례와 달리 구도심 활성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간 깊은 고민을 이어왔다.

 

△이재운=역사학자로서 전라감영을 반드시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수차례 해왔다. 전라감영은 역사가 준 선물로, 광주·대전 등 다른 지자체는 감영을 복원하고 싶어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문화유산 자원을 후대에 넘겨줘야 할 의무가 있다.

 

△이동희=전라감영은 조선시대 전라도 일대를 통괄하는 전라도 최고의 지방관서다. 조선시대 전라도는 지금의 전라북도와 남도, 제주도까지 포괄하는 지역이다. 그러니까 전주가 전라도의 수부, 호남제일성이었다.

전라감영 복원은 전라도 천년의 중심 전주의 역사성을 복원해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문화관광자원으로 육성해 구도심을 활성화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감영복원이 완료되면 역사성 회복과 구도심활성화의 목적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보며, 문화관광의 명소로서 더 큰 그림도 구상해 볼 수 있다고 본다.

 

△황=조선시대 관원들이 근무하는 곳을 관아라 하는데 관아 중에서도 각도의 관찰사(감사)가 집무하는 관아를 감영(監營)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전라도는 전라북도와 남도, 제주도를 관할하던 행정구역이었으며 관찰사는 행정, 사법, 군사상의 최고 책임자였다.

전라감사는 민정·군정상의 최고 실권자로서 전라도 통치 행정을 총괄하면서 위로는 국왕의 지휘와 통제를 받으면서 아래로는 전라도 56개 군·현의 수령들을 지휘 통솔했다. 이같이 전라도 통치 행정을 총괄하던 관찰사가 정령(政令)을 선포(宣布)하던 감영이 있던 전주는 바로 전라도의 수도(首都)이며 정치의 중심지이자 문화 중심지였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의 시기에는 봉건정부와 동학농민군 사이에 역사적인 전주화약이 체결됐고, 한국 사상 최초의 농민 통치기관이었던 군·현 단위 집강소 정치시기에 민관협치 집강소의 총본부인 전주에 감영대도소를 설치하여 전라도의 혁명적인 개혁정치를 지휘하였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전라감영 복원을 통해 전라북도와 남도, 제주도를 관할하던 호남 제일도시의 위상을 다시 세우고 시민들에게 전주에 대한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권=선화당·내아·관풍각·연신당 등 전라감영 핵심건물 복원을 완수했으며, 향후 내삼문 등 일부 건물에 대한 복원을 앞두고 있다. 복원된 전라감영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며, 어떤 콘텐츠로 채워 넣을 것인가에 대한 도민 관심이 높다.

 

△남=전라감영은 현재 7개 건물 중 동헌인 선화당과 관풍각, 내아, 내아행랑, 연신당 등 5개 건물이 완공됐다. 그리고 비장청 행랑과 내삼문이 복원될 예정이다.

콘텐츠로는 핵심 건물인 선화당에는 와이드 프로젝션비전과 디지털병풍을 설치하고 내아에서는 교육체험, 연신당에서는 반응형 라이브러리와 VR 체험, 관풍각에서는 타임슬립 만리경 등을 운영할 계획이다. 또한 감영 내부를 증강현실로 복원해 방문객이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다. 단지 역사적인 내용을 유지하고 보존하면서 종합적이고 관광효과를 불러 올 수 있는 내용은 좀 더 구상을 해야 할 것 같다.

 

△엄=전라감영터는 구도청사가 있었던 곳이라는 특이점이 존재한다. 단지 건물만 복원하는 박제화 된 공간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역사실, 자료실, 풍습 등 조선왕조 뿌리 깊은 터전임을 알리는 핵심적이고 창의적 공간으로 문화콘텐츠가 살아있는 공간으로 복원할 필요성이 있다.

내삼문은 일제강점기 도청사 적심과 기초시설 하부에 위치한 걸로 추정되며 반복적으로 이뤄진 후대의 건물지 조성 등으로 훼손이 심한상태여서 유구의 잔존상태가 좋지 않다. 때문에 고려할만한 유구나 유물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정면 다섯 칸으로 규장각소장 전주지도(18세기), 완산십곡병풍도(19세기)를 참고해 복원하고 있다.

또 계획지반에 시기별 도청사 흔적을 표현하여 안내판을 설치하는 등 도청사 유구 흔적남기기도 이뤄진다. 1921년 도청사 유구(적벽돌 포장)와 1956년 도청사 유구(화강석 판석 설치)의 흔적을 강화유리 덮개를 설치해 누구나 야외에서 볼 수 있게 전시, 일제침탈의 역사와 전라감영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려 한다.

 

△권=2017년 첫 삽을 뜬 전라감영 복원이 어느덧 마무리 단계다. 현재 복원은 동편과 서편을 복원하는 당초 계획과 달리 동편에 한정해 이뤄졌다. 서편에 대한 복원 계획이 확실치 않은 가운데 서편 복원에 대한 의견을 말해 달라.

 

△남=전라감영은 현재 동편에서 5개 건물을 완공했고 2개 건물에 대한 공사를 시작하고 있다. 서편에 대한 개발계획은 아직 수립되지 않았다. 아직 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가운데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기는 조금 어렵지만 서편은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이번에 복원한 건물 일부는 자료가 있었지만 많은 부분이 자료가 미비한 가운데 복원됐다. 그러한 차원에서 자료를 어느 정도 확보한 다음에 복원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건축공사나 문화재공사는 서둘러서 좋을 것 없다. 시간을 갖고 고민하면서 세월과 더불어 복원하는 것도 방법이다. 예를 들면 가우디가 참여한 스페인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은 공사를 시작한지 현재 약 13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계속 공사를 하고 있으며 완공까지는 150여 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이것도 예상이지 더 걸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재운=권장사항으로 시와 도가 협의해 동편까지만 복원을 진행했다. 동편에만 건물이 들어서는데 사실 서편에는 전라감영이 갖고 있는 선자청 등 부속 건물들이 있다. 지금 당장 복원을 착수하지 못하더라도 장기적인 계획으로 복원이 재개될 때까지 공간을 비워둬야 한다. 건축물이 들어서는 경우 다시 복원 할 때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부지를 비워 휴게 공간인 광장과 같은 공간으로 잔디를 식재해 언제든 복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감영의 옛 모습을 그릴 수 있도록 해달라는 주문이다.

 

△이동희=서편부지는 앞에서 말했듯이 위원회에서 감영건물을 복원하는 것으로 의결했다. 단 도청과 협의한다는 전제가 달려 있다.

서편은 감영의 핵심건물의 하나인 영리청이 있는 곳이다. 영리청은 전라감사의 도정을 보좌하는 아전들인 영리(營吏)들의 집무처다. 감영 내의 업무를 담당하는 아전들은 인리(人吏)라고 하는데, 이들 인리의 집무처는 전주완산경찰서 자리에 있던 작청이다.

서편은 문화적으로 중요한 건물들이 자리했던 곳이다. 전라감영의 타도 감영과의 차별성은 통치 외에 문화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서편에는 전주대사습놀이의 주역인 통인들의 근무처 통인청이 있고, 종이를 만드는 지소, 책을 인출하는 인출방 등이 자리했다. 향후 전주 약령시와 연계시킬 수 있는 심약당도 여기에 있었다. 또 구도청 앞 큰 길 건너 전주완산경찰서 서편에는 부채를 제작하는 선자청이 크게 자리했다.

서편 건물 전체를 복원하자는 것이 아니다. 동편 복원처럼 서편의 주요 건물만 몇 채 복원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복원 범위에 관한 용어도 전체복원이라고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으므로, 부분복원이라 하는 것이 적절할지 모른다. 서편 건물을 이렇게라도 복원해야 감영의 규모가 나오고, 형세가 갖추어져, 전라감영이 타도 감영과 차별화된 문화자원이 될 수 있다.

중장기적 문제지만 3단계로는 전주완산경찰서 부지에 전라감영 주요 건물들을 복해야 한다. 여기까지 되면 조선시대 지방최고의 통치기구 감영의 모습을 다 갖추는 것이다. 전라감영은 타도와 달리 유일하게 감영부지를 다 확보하고 있다. 앞부분이 완산경찰서가 자리하고 있지만 이는 관 건물로 개인 소유 땅에 비해 확보하기 쉬운 땅이다. 따라서 의지가 있고 여건이 조성되면 복원이 가능하다. 다만 이는 향후의 중장기적이 계획아래 이뤄질 일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다.

 

△권=박제화 된 건물 복원에서 벗어나 관광효과를 기대하고 있으나 일각에선 콘텐츠 부족 등 타지 관광객 유입 등에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관광 활성 견인할 방안은 무엇인가.

 

△이동희=지금 일부만 복원된 상황에서 관광객 유입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옥마을과 연계되고, 객사와 연계되는 큰 그림이 나오게 되면 지금의 관광권역이 확대되고 이에 따라 한옥마을만이 아니라 감영주변 등 구도심의 문화관광이 활성화될 수 있다.

감영이 제대로 복원되면 전주천가의 향교로부터 오목대, 이목대, 경기전, 전동성당 등을 비롯한 한옥마을권역과 풍남문, 전라감영, 객사 등이 연계되어 역사도심 전주의 큰 전통문화관광권역이 설정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영이 제대로 복원되고 규모를 갖춰야 하며, 빈 건물이 아니라 콘텐츠가 채워진 관아건물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또 적어도 서편건물이 복원되어야 감영이 규모를 갖추게 되어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 내년에 우선 동편을 오픈하고, 서편 건물 복원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엄=전라감영 테마거리 ‘퍼블릭 아트 스트리트’ 활성화 방안이 있다. 한옥마을에서 시작해 남부시장-풍남문-전라감영-객사(풍패지관) 까지 이어지는 루트를 좀 더 색다르게 연출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 차 없는 거리는 한옥마을에 국한돼 시행하고 있지만, 전라감영에서 웨딩거리로 객사로 이어지는 길을 사람들이 더욱 편하게 걸을 수 있고 예술을 향유 할 수 있는 특색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사람들이 걸을 수 있게 편하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공공미술작품을 곳곳에 설치하여 예술의 거리로써 사람들이 전라감영의 전통적인 느낌과 함께 현대적인 공공미술의 개성 있는 작품을 자연스럽게 웨딩거리를 거쳐 객사로 이어지는 ‘퍼블릭 아트 스트리트’를 만들어야 한다.

웨딩거리 경원동 우체국 앞에 설치된 조형물은 특색 있는 테마거리 조성의 좋은 예라 생각한다. 전라감영 테마거리에 아직 부족한 공공미술작품을 더 확대 설치할 필요성이 있으며, 전통과 현대적인 느낌이 공존하는 전주의 특색 있는 장소로 변모해야 한다.

 

△권=2018년 출범한 3기 위원회가 올해 연말이면 임기 2년의 활동 종료를 앞두고 있다. 그간의 활동에 대한 소회와 함께 전라감영 복원과 관련해 한마디 부탁한다.

 

△남=전라감영은 복원에 관한 소회는 개인적으로 많은 부분이 있다. 처음 국고를 확보하기 위해 부분적인 발굴을 하고, 서둘러 정비계획을 만드는 등 노력했던 생각도 떠오른다.

풍락헌 건물을 확인하기 위해 구이에 가서 건물을 처음 보는 순간 이것은 재실건물이 아니고 품위 있고 격식이 높은 관아건물임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정말 감동이었다.

저희 대학(전북대)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대학원에 한옥학과를 만들고 인간문화재인 최기영 대목장을 교수로 영입했다. 최기영 대목장은 전주부성의 풍남문을 기획했던 최유경 선생의 후손이다. 그분을 모시고 전라감영복원사업을 진행했다. 완공된 뒤 선화당 건물을 보고 이것이 풍락헌 건물과 주는 느낌이 너무도 똑같아 가슴이 황홀했다. 이것은 한옥에서 척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목수도 그래서 중요하다. 지금은 전라감영터만 문화재이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 이 건물도 문화재가 될 것이다. 이렇게 전라감영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건축은 인간의 생활을 담는 그릇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어떤 한 사람의 인생사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하물며 전라감영이라는 건물에는 온갖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의미가 담겨있는 전라감영이다. 이번 전라감영의 복원을 계기로 모쪼록 전북 도민들이 자존심을 회복하고 하나 된 마음으로 노력해 후손들에게 풍요로운 전라북도를 물려주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다.

 

이동희=-감영이 제대로 복원되어 향후 국가문화재 ‘사적’ 지정을 받아야 한다. 사적이라고 해서 활용을 못하는 것 아니다. 사적이 되어야 그 가치가 높아지고 국고 지원도 가능해진다. 그러러면 무엇보다 고증을 철저하게하여 최대한 원형을 갖추어 복원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전문가들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구도청건물을 철거하고 감영을 복원하는 것이다. 감영복원은 구도청건물을 철거한 채무가 있다. 감영복원이 잘 되어 구도청건물 존치보다 그 가치가 높아져야 한다.

 

△이재운=도민들이 많이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단 이 터는 전라감영이 있던 곳으로 도 지정문화재다. 문화재는 도민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숨을 쉬고 살아있는 공간으로 자리한다. 그렇지 않는 경우 복원이 갖는 의미는 없다. 많은 시간과 노력, 애정을 들여 복원한 만큼 도민들이 사랑하고 찾는 공간으로 살아났으면 한다. 그래야 외부인도 올 것이라 생각한다.<끝>

 

 

제3기 전라감영 복원 재창조위원회(가나다 순) △김남규 전주시의회 문화경제위원 △김은정 전북일보 콘텐츠기획실장 △김종만 시민행동21 공동대표 △김홍기 풍남문상인회장 △남해경 전북대 교수 △ 문윤걸 예원예대 교수 △박형배 전주시의회 문화경제위원장 △신상섭 우석대 교수 △엄혁용 전북대 교수 △이남숙 중앙동통우회 회장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 △이명우 전북대 교수 △이문현 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이재운 전주대 교수 △조법종 우석대 교수 △홍성덕 전주대 교수 △홍승재 원광대 교수 △황권주 전주시 문화체육국장 △황철호 전라북도 문화체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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