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얼굴없는 천사가 다녀간 가운데 기부금을 훔치는 사건이 발생해 도민들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얼굴없는 천사는 지역을 대표하는 익명의 기부자로 그간 기부문화 확산에 역할을 해왔다.

30일 전주시와 전주완산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얼굴없는 천사 기부금을 훔치는 사건이 발생해 사건 발생 4시간여 만에 경찰에 검거됐다.

이날 얼굴없는 천사는 오전 10시 3분 노송동주민센터를 찾아 기부금이 든 상자를 놓은 뒤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 “뒤쪽에 상자가 있다”며 최초 연락을 취했다.

전화를 받은 주민센터 직원들이 얼굴없는 천사가 일러준 장소를 찾았으나 기부금이 든 상자는 사라진 뒤였다.

얼굴없는 천사로부터 성금 위치를 알려주는 연락이 4분 뒤인 10시 7분과 12분, 16분 4차례에 걸쳐 재차 이어졌으나 주민센터 직원들은 기부금을 찾을 수 없었다.

이에 노송동주민센터는 오전 10시 37분 경찰에 도난 신고를 접수, 46분 얼굴없는 천사로부터 걸려온 5번째 연락에서 경찰 신고 사실을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얼굴없는 천사는 경찰 조사 등에서 신분 노출이 되지 않도록 당부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인근 CCTV를 통해 용의자 A씨(35)와 B씨(34)를 특정, 이들이 차량을 이용해 기부금을 훔치는 모습을 포착했다.

용의자들은 절도 이후 곧장 서해안고속도로를 통해 서울방면으로 이동했으며, 경찰은 충남 계룡시와 대전 유성구에서 이들을 모두 검거했다. 경찰은 이들이 훔친 기부금 6000만원 상당에 대해 거둬들였다.

얼굴없는 천사는 2000년 4월 돼지저금통에 든 58만4000원 기부를 시작으로, 지난해 12월 5020만1950원까지 총 20차례에 걸쳐 6억834만660원을 기부했다. 시는 연말이면 찾아와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해달라”는 익명의 기부자를 얼굴없는 천사라 이름을 붙여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그의 선행을 알리고 있다.

이날 기부금 절도 사건을 지켜본 한 주민은 “믿기지가 않는다. 어떤 상황에 처했더라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한 것을 가지고 도망갈 생각을 하는지 당혹스럽다”면서 혀를 찼다.

전주시 관계자는 “기부금 도난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천사의 도시’ 이미지가 훼손되고 훈훈하던 세밑 분위기가 우울해질 것을 걱정했다”면서 “우여곡절 끝에 기부금을 되찾아 어려운 이웃을 도와달라는 얼굴없는 천사의 당부와 희망을 이어갈 수 있어 천만다행이다”고 말했다./권순재기자·aonglh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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