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부채에 그림과 글씨를 써넣은 풍속은 고려 중엽부터 시작되었다. 더위를 피하거나, 비를 피하는 생활용품으로서의 목적을 넘어, 부채의 선면(扇面)에 그려진 글과 그림은 그 사람의 품격을 높여 주었다. 새해를 맞아 시서화를 통해 선면에 담은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사)문화연구창 전주부채문화관이 2020년 경자년을 맞이하며 서예 문인화 장르의 관록 있는 중견․원로 작가의 작품을 부채에 담은 ‘송구영신(送舊迎新)전’을 2월 4일까지 연다.
  전시에 참여한 김승방, 김춘자, 이은혁, 하수정 작가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소망을 시서화로 부채에 담았다.
  김승방 작가는 묵죽과 묵란, 논어 술이편의 곡굉락(曲肱樂)을 선면에 담았다. 곡굉락은 ‘팔을 구부려 베개를 삼는 즐거움’을 뜻하며 ‘빈천한 음식을 먹고 마셔도, 팔을 구부려 베개를 삼으면 즐거움은 그 속에 있다. 의롭지 못한 수단으로 부자가 되고 귀하게 되는 것은 나에게 뜬 구름같이 생각된다.’는 구절로 되새겨 읽을 만한 문구다.
  김춘자 작가는 이상은 시, 김시습 시구, 장자의 득기환중, 월색명대지(月色明大地) 등을 선면에 담았다. 월색명대지는 ‘달빛이 대지를 환히 비추네’라는 뜻으로 중국 운남성 나시족이 현재까지 사용하는 최후의 상형문자 동파문자(同巴文字)로 작품을 완성했다. 김춘자 작가는 달빛이 온 대지를 밝게 비춰 모두에게 만복이 든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이은혁 작가는 ‘여우와 까마귀’의 고사, 굴원의 ‘어부사’의 부분을 부채에 담고 담담한 담채로 선면을 채웠다.
  하수정 작가는 남원 최수봉 장인의 쌍죽선을 채색하고 한지꼴라주로 재구성했다. 한지 콜라주 기법을 이용해 새해의 소망을 담은 ‘근하신년 비상’, 다가올 봄의 소망을 담은 ‘수선화’도 주목한 만한 작품이다.
  문의 063-231-1774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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