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 국민연금공단 
 
 
삶의 무게가 힘들어지면 누구나 한번쯤 일탈을 꿈꾼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자기만의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찾는다. 나도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객기가 생겨 혼자 떠나는 여행으로 충전의 기회를 갖고 싶었다. 나이 오십이 되어 무작정 홀로 여행을 떠났다. 설악산 4박 5일 여행이 시작이었다.
 겨울산행은 만만치는 않았다. 아이젠을 끼고 용추폭포까지 올라가면서 아름다운 설경을 만나기도 했지만, 한계령 골짜기에서는 황량한 칼바람도 있었다. 내가 살아온 삶처럼 설악산은 설경의 아름다움과 한계령의 칼바람이 함께 존재함을 알았다.
 설악산을 다녀온 뒤부터 여행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산보다는 섬여행에 관심을 가졌다. 기초체력이 부실한 내게는 산행보다 섬여행이 맞는 것 같았다. 섬여행은 바다를 건너야하는 부담이 있지만, 섬의 고유한 매력은 나의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계획을 세워 처음 향했던 곳이 홍도와 흑산도였다. 휴가를 내어 무작정 떠났다. 목포에서 홍도로 가는 배를 탔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나처럼 홍도와 흑산도로 가는 패키지 여행객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뱃멀미가 심해 많이 힘들었다. 며칠 전에 먹었던 음식까지 모두 토하는 기분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뱃머리 계단에서 주저앉아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따라 함께 온 친절한 여행객 도움을 받아 목적지로 갈 수 있었다.
 홍도는 해질녘 노을이 섬을 붉게 물들여서 이름이 홍도라고 한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홍도의 아름다움을 뒤로 하고 흑산도로 향했다. 홍도에서 흑산도까지 유람선으로 30분 정도 걸린다. 유람선을 타고 흑산도 일주를 하였는데 저마다의 사연과 전설이 있는 우뚝 솟은 바위섬들이 우리네 사는 모양새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유람선 너머로 바위산 절벽 끝에 하얀 무리가 보였다. 흰염소떼였다. 절벽의 흰염소를 보는 순간, 잊고 있었던 나의 자화상을 보는 듯 벅찬 감동이 올라왔다. 사람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비탈진 초록의 영토, 그 자유의 한계에서 낯선 사람들을 바라보는 염소떼의 모습은 외롭지만 도도해 보였다. 사람의 어떤 지위와 비교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지금도 가끔 아찔한 벼랑 끝에서 도란도란 이웃하여 있던 흰염소떼가 생각이 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섬여행을 했다. 독도에서 태극기를 들고 인증샷을 남기기도 했고, 기암절벽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는 울릉도 해안산책로를 걸으면서 아름다운 비경을 보기도 했다. 나는 한여름에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고집하는 커피 마니아다. 비오는 욕지도에서 한기를 느끼며 커피가 아닌 고구마라떼를 마셨던 또 하나의 추억도 있다. 섬여행은 뱃멀미와 날씨에 대한 부담은 있었지만, 언제든지 나를 반겨줄 것 같은 기대감을 가진다.
 혼자 다니는 섬여행은 또 다른 희열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와 용기이다. 더불어, 혼자만의 여행은 삶의 여독을 버릴 수 있어서 좋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고집과 절대 고독은 죽을 때까지 버릴 수 없다고 한다. 고집과 절대고독, 그것은 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바다 위에서 혹독한 비바람과 태풍을 고스란히 이겨낸 섬일수록 그 풍경이 빼어나듯이 인생의 바다에서 아픈 눈물을 가슴으로 삼켜본 사람일수록 내적으로 향기가 깊은 삶이 될 것이다.
 또 다시 겨울이다.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출구를 꿈꾸는 여린 마음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마지막 50대 계절이 지났음에도 오만가지 번민을 끌어안고 소식 없이 사는 걸 보면 아마 다들 무사한가 보다. 길 위에 홀로 앉아 섬여행의 추억을 올려놓고 따뜻한 고구마라떼 한잔을 마시며 벼랑끝 흰염소를 기억하면서 나는 찬란하고도 존엄한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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