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설 별의별협동조합 이사장
 
역사적으로 가장 큰 통합을 이루었던 제국은 칭기즈칸이 이끌었던 몽골제국이다. 칭기즈칸이 열었던 제국은 종교와 인종, 지역을 초월한 만남과 소통이 보장된 사회였다고 한다. 각 종교 지도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토론을 하고 각각의 인종이 일상적으로 교류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으며 서로 다른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이 대다수였기에 현재 살고 있는 곳, 그곳이 자신의 삶터였던 것이다. 무수한 정복을 거친 몽골군도 다국적 군대였다. 심지어 포로로 잡힌 적군까지도 능력이 있으면 지휘관으로 발탁하고 소속 부족이나 담당 업무에 무관하게 차별이 없었다.
더 특별한 것은 정복을 한 지역의 종교와 문화, 언어를 강요하지 않았다. 특히 종교는 개인의 문제이지 국가가 관여할 성질이 아니라고 선포했다고 하니 과연 몽골제국의 세계정복은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평등과 자유를 위한 것이었으리라 짐작해본다.
 ‘로컬’이 중심이고 대세인 이 시점에 나는 칭기즈칸처럼 지역을 초월하여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지는 제국을 상상한다. 건축에 집중할수록 건축에 초월하게 되고 지역에 집중할수록 지역을 초월하게 되고 그 모든 것이 귀결되는 곳은 바로 ‘사람’이다. 다양한 우주를 품은 사람.
지역이 허용하는 문화는 어디까지인가.
사람의 문화적 감수성은 대부분 경험에서 비롯된다. ‘OO사람’이라고 통용되는 지역의 이미지들이 있다. 서울사람, 충청도 사람,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 제주 사람, 강원 사람... 이렇듯 나고 자란 풍토와 지형이 생활문화를 만들고 식습관을 결정짓고 그 지역사람들의 성격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든지 각자의 성향과 특성과 상황이 사뭇 다른 사람들이 구성되어 있는데도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에게 개방적이고, 또 어떤 곳에서는 폐쇄적인 문화를 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그러다 스스로 개방적이라고 느꼈던 내가 실은 이제껏 겪었던 경험치만큼만 느끼고 수용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껏 겪어보지 않은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것에 내가 얼마나 취약한지 알고부터는 요즘엔 그 누구를 만나도 나이와 지역과 학교를 물어보지 않는다. 경험으로 알고 있던 편견에서 좀 더 자유로워져야 타인을 좀 더 편안하게 대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한 것이다.
살면서 얼마나 다른 종교인, 다른 지역민, 다른 성별, 다른 인종, 그리고 다른 성적 취향의 사람들과 만나왔는지에 따라 그 사람이 타인을 만날 때 어느 정도의 개방성을 띄는지 알게 된다.
지역사람이라고 지칭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지역에 소위 남다른 문화시설이 들어오거나 괜찮은 사업이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지역사람’이 기꺼이 받아야 할 지분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사업 입찰부터 지역 참여 작가 및 지역 업체 비율, 그리고 지역민 입장권 할인까지 ‘우린 이 지역에 살아서 얼마나 좋은가’라며 지역민의 자부심과 참여도를 향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때엔 그 정도를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모를 일도 종종 생긴다. 어떤 사람은 타 지역 사람들이 영혼 없이 사업을 해치우고 간 걸 경험했기에 외부인을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는가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지역민의 안일한 대처와 무능한 연줄타기에 질렸다는 반응도 있다. 이것은 정말 ‘지역 VS 타 지역’의 문제일까?
제 3자이기 때문에 지역 내·외의 상황들을 훨씬 더 잘 간파하며 지역 문제를 신선하게 해결하는 사람도 있고 또한 지역사람이기 때문에 지속가능성을 두고두고 고민하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도대체 지역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또 하나, 각자가 말하는 지역은 어디까지를 이야기하는가. 내가 말하는 지역은 매번 바뀐다. 나의 지역은 어떤 때엔 동네, 또 다른 때엔 전주시, 또 다르게는 전북권이기도 하다. 또 외국인 친구를 만나면 내가 사는 ‘한국’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처럼 개개인마다 다른 범주와 영역이 있는데, 이것을 지역(로컬)로 통칭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지금 우리의 세대는 ‘로컬의 시대’라고 한다. 이는 어떤 경계 안의 이야기가 아니라 작고 소중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제껏 거대 담론이 우위에 서 있었고, 발전 가능성이 높은 것 위주로 모든 자원이 집중된 시대였다면, 이제 그러한 시대가 바뀌고 작고 일상적인 것들의 재발견, 다양한 가치의 존중, 그리고 지속가능한 순환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말하는 ‘지역’이라는 것이 그저 지리적인 측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이제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주변’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흑과 백으로 나누는 시대는 지났다. 어느 지역에서라도 1과 0 사이의 수많은 가능성들을 찾는 사람들이 바로 ‘로컬 크리에이터’일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지역을 나누거나(지역민 vs 외부인), 성패를 나누는 것(성공 vs 실패)보다 창의적인 사람들의 안목으로 새롭게 발견되는 과정, 그 안에서의 만남, 그리고 지역의 다양한 가치를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2020년엔 자신이 ‘우리 동네’ 혹은 ‘우리 지역’이라 부를 수 있는 곳에서 한껏 개성을 꽃피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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