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민 전주시 사회혁신센터 소장
달력을 보니 1월도 어느덧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무심하게 지나간 날들을 보며 당초에 세웠던 계획들을 점검해봅니다. 다양한 계획들과 목표들이 있었는데요. 대략 요약하면 ‘보다 더 지혜롭고, 용기 있고, 대담하게 살자’였습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날을 예상하니 계획대로 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습니다. 안 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맘처럼 시원하게 발휘되지 않은 용기입니다. 용기없는 순간과 선택들은 새롭게 무언가를 실천하고 변화하기로 했던 저를 그대로 멈추게 하고 있습니다. 새벽에 달콤한 침대의 유혹을 벗어나 과감하게 일어나는 용기부터 시작해서,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과감하게 정리할 수 있는 용기까지 다양한 순간에서 용기가 필요한데 말입니다.
  새로운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용기를 발휘하고 있나요? 제 스스로를 반성하며 류시화 시인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구독자님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한 수도승이 제자와 함께 여행을 떠났습니다. 날이 어두워져 머물 곳을 찾던 그들은 산속에서 오두막을 발견했습니다. 헛간 같은 집에는 부부와 세 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집 주위에는 곡식도 나무도 자라지 않았습니다. 여윈 암소 한 마리만 묶여 있었습니다. 수도승과 제자가 하룻밤 잠자리를 청하자, 부부는 안으로 맞아들여 간단한 음식과 치즈를 대접했습니다. 가난하지만 너그러운 그들의 마음씨에 두 사람은 감동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수도승이 그 가족에게 이런 척박한 곳에서 어떻게 사는지 물어봤습니다. 부부는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는 늙은 암소 한 마리만 있습니다. 우유를 짜서 마시거나 남으면 마을에 가져가 다른 식량과 바꿉니다. 그렇게 겨우 살아갑니다.”
   이튿날 아침 수도승과 제자는 길을 떠나며, 수도승이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암소를 절벽 아래로 밀어뜨려라.”
   제자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저 가족은 암소에 의지해 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암소가 없으면 굶어 죽습니다.”
   하지만 수도승은 재차 지시했습니다.
   “얼른 가서 내 말대로 하라.”
   제자는 그 가족이 걱정됐으나, 지혜로운 스승의 명령을 따르기로 서약했기 때문에 암소를 절벽 아래로 밀어뜨렸습니다.
   몇 년 후, 제자 혼자 여행 도중 그 오두막 부근을 지났습니다. 그리고 늦었지만 그 가족을 찾아가 용서를 빌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예전의 장소로 들어선 제자는 놀랐습니다. 그 자리에는 아름다운 집이 세워졌고, 밭과 화단이 있었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풍요와 행복이 넘쳤습니다.
   제자가 문을 두드리고 물었습니다.
   “전에 이곳에 살던 가족은 어떻게 됐나요? 굶어 죽었나요?”
   남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자기 가족은 그곳에서 줄곧 살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제자는 예전에 스승과 함께 오두막에서 하룻밤 묵은 이야기를 하며 다시 물었습니다.
   “이곳에 살던 그 가족에게 그 후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남자는 제자를 집 안으로 초대해 자기 가족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설명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여윈 암소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암소에 의지해 겨우 굶지 않을 만큼 살아갔었죠. 그 외에는 다른 생계 수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암소가 죽었습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만 했고, 새로운 기술들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버려진 밭에 약초를 심고 묘목들도 키웠습니다. 다른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됐습니다. 그 사건은 우리에게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훨씬 의미 있게 살게 됐습니다.”
   스승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차하게 의존하는 것, 시도와 모험을 가로막는 것을 제거해야만 낡은 삶을 뒤엎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전하게 살아가려고 마음먹는 순간 삶은 우리를 절벽으로 밀어뜨립니다. 파도가 후려친다면,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살 때라는 메시지입니다. 어떤 상실과 잃음도 괜히 온 게 아닙니다.
   나는 지금 절벽으로 밀어뜨려야 할 어떤 암소를 갖고 있나요? 그 암소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내 삶이 의존하고 있는 안락하고 익숙한 것. 그래서 더 나아가지 못하게 나를 붙잡는 것은? 질문은 그 자체로 삶의 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 그 암소와 작별해야 합니다. 삶이 더 넓어지고 더 자유롭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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