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실 금융감독원 전북지원장
며칠 전 오랜만에 한 패스트푸드점을 찾아 주문을 하려는데, 키오스크라 불리는 무인자동화기기를 통해서만 주문을 받는다는 직원의 설명을 듣고, 적지 않게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기업의 비용 효율성이 강조되고, IT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이 직접 제공해 오던 각종 서비스가 점차 자동화, 무인화되고 있다.
최근 IT기술과 금융을 결합한 핀테크(Fin-Tech)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이러한 흐름은 금융 분야에서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간편결제서비스, 인터넷전문은행, 로보어드바이저, 오픈뱅킹 등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개념의 금융서비스들이 속속 현실화되면서, 모바일 기기 사용에 익숙한 금융소비자들에게 특히 유용한 금융서비스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디지털 금융혁신으로 인해 전에 없던 편리한 금융서비스를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반가운 변화다. 하지만, 모바일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은 이러한 변화를 온전히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8년 모바일 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 결과’를 보면, 30대와 40대의 모바일 뱅킹 서비스 이용 비율이 각각 87.2%, 76.3%인 반면, 60대와 70대 이상의 경우 각각 18.7%, 6.3%에 불과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전북도민 대상으로 금융교육을 하는 과정에서 어르신들을 자주 만나 뵙게 되는데, 온라인 금융거래에 필요한 디지털 신분증인 공인인증서 발급 절차를 모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방식의 금융거래가 확대되면서 고령층이 선호하는 대면 방식의 금융거래는 점점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 은행의 영업 점포수는 2012년 7,698개에서 2018년에는 6,771개로, 6년 만에 12%나 줄어들었고,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면 자동적으로 종이통장을 발급해 주는 것도 옛말이 되어 버렸다. 금융회사의 각종 할인 혜택 또한 비대면 방식의 금융거래에 집중되고 있다. 우대 금리나 할인 쿠폰은 모바일 거래 위주로 적용되고, 같은 보험이라도 온라인을 통해 가입하면 보험료가 줄어든다. 디지털 금융혁신의 혜택이 모든 계층에게 균일하게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금융권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해 왔다. 일부 금융회사들은 고령자 전담 창구를 마련하거나, 고령자용 모바일 앱을 개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도 고령층을 위한 금융교육 교재와 디지털 금융 관련 동영상을 개발하고, 금융사기 피해 예방 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고령층이 느끼는 금융의 문턱은 여전히 높아만 보인다.
IT기술을 기반으로 한 금융부문에서의 4차 산업혁명은 시대적 조류이며, 앞으로도 금융서비스의 비대면화, 모바일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우리 사회의 고령화는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45년 고령화 비율이 37%에 달해 세계 최고 수준이 될 전망이다. 금융업계가 고령층에 대한 세심한 배려 없이 효율성, 수익성만을 추구한다면 고령층은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점점 더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우려가 있다. 고령층이 금융서비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디지털 세상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소양과 능력을 길러 줄 필요가 있다.
2013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쉴러 예일대 교수는 그의 저서 ‘새로운 금융시대(Finance and the Good Society)’에서 금융의 기능에 대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조를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다양한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중요하고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금융이 이와 같은 사회적 순기능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연령이나 소득 수준 등의 영향을 받지 않고 금융시스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 디지털 세상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업계와 감독당국은 물론 우리 사회 전체의 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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