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 2기 입주작가 7명의 1년간 창작활동 입주결과 보고전 ‘현재의 기억’이 5일부터 3월 1일까지 열린다.
  강민정, 강은혜, 김영란, 박진영, 안준영, 최수련, 최은숙 7인의 작가가 거주인이자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전시다.
  지난 1년 동안 전주와 지역을 오고가며 경험한 것들을 각자의 시선과 기억을 담은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의 기억’이라는 명제는 현재 거주하고 있는 전주라는 지역에서 창작을 하면서 다른 환경에서 온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물어보며 지역과 지역사이의 경계를 넘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한다.
  ▲강민정 <조>(2020), 단채널 영상.
  전시장 가운데에는 불길이 있다. 그 위에는 데운 돌과 데운 나무, 눌린 불꽃이 있다. 마주보는 스크린에는 아궁이 여신의 이야기가 재생된다. 오래된 여신의 설화를 지금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작업이다.
  ▲강은혜 <영원회귀>(2020), 실. 장소특정적 설치.
  끊임없이 반복되는 작가의 삶, 레지던시로 서울과 전주를 오가는 물리적, 정신적 거리감을 공간 안에 표현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공간 안에 이어지는 선들을 이용하여 반복되는 영원을 형상화했다. 니체의 영원회귀라는 개념을 통해 바로 지금을 포함한 매순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공간의 선들은 구역을 나눔과 동시에 잇기도 하며 시간과 기억을 담는다.
  ▲김영란 <시간의 느낌> 부분(2020), 드라이 플라워, 유리병, 벽면의 가변설치.
  두 개의 방(The two rooms): 오십 넘어 소원하던 10자 자개농과 서랍장 일체를 안방에 들이고 몇 날을 닦고 또 닦던 엄마는 그렇게 자신의 방이라 여긴 안방에 정성을 들이셨다. 그러나 그곳엔 아버지의 전유물과 허울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정작 무언가를 해보고 싶고, 말하고 싶고, 자유롭고 싶었던 당신은 곱게 접어 장롱 깊숙이 넣어두어야만 하셨다. 당신의 꼬물거리던 손재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막내딸에게 “여자도 자기 일이 꼭 있어야 해”를 누누이 말씀하셨을 뿐이었다.   이제 엄마의 그 나이에 선 나는 씩씩하게 두 개의 방 사이를 오간다. 엄마가 그리도 지키려 했던 한 가정의 ?엄마의 방?과 오롯한 나만의 공간 사이를.
  ▲박진영 <초인-休>(2019), 캔버스에 유채.
  이전 작업부터 하고 있는 이야기는 ‘사람’이다. 사람에서 초인으로 옮겨갔지만 결국 삶을 사는 우리의 이야기다.  초인의 사전적 의미는 ‘불가능이나 한계를 극복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으나 그 어느 때보다 빈곤함을 느끼는 요즘, 일상의 작은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불투명한 미래에 좌절 할 때 마다 이를 극복해낼 초인적 의지와 지혜가 필요하다. 이상과 가치를 뛰어넘은 ‘초인’이 특별한 인물이 아니며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임을 담아내려 한다.
  ▲안준영 <나쁜 숨> 부분(2020), 벽면에 혼합매체, 가변 설치.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항상 ‘무엇이 나를 아프게 하였는가?’ 또 ‘무엇이 나로 하여금 행위를 지속하게 만드는가?’ 라는 질문을 반복하기에 그러한 고민들을 입주작가 릴레이전에서 혐오라는 넓은 범위의 단어로서 풀어내었다. 그리고 현재 준비하고 있는 결과보고전 ‘나쁜 숨’이라는 제목의 작업은 그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최수련 <무제(임언사)> 부분(2020), 리넨에 유채.
  ‘태평녀’는 80~90년대 중국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비통하고 우울한 얼굴의 ‘동양 고전풍’ 여인들의 초상을 담은 회화/드로잉 연작이다. 다양한 이유로 탄식하는 여인들은 그 비애의 와중에도 가녀린 모습을 잃지 않고 예쁘게 슬퍼한다. 이것은 현실의 고통에 반응하는 감정적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지금은 더 이상 아무런 힘도 없는 태평한 회고취미 이미지로 보이기도 한다. ‘○○녀’라고 쉽게 명명되곤 하는 작금의 여성들처럼 나는 그들에게 ‘태평녀’라는 이름을 붙였다.
  ▲최은숙 <사물들_no.2>(2020), 캔버스에 아크릴릭.
  평등사회라고 불리는 요즘에도 위계는 어렵지 않게 발생한다. 과거의 신분사회는 경쟁사회로 간판만 바뀌었을 뿐, 유능함을 무기로 승리의 전리품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나의 계급은 결정된다. 인간관계 속에서 계급의 작동여부는 오롯이 전리품들이 드러내는 안정적인 외견, 즉 견고한 재력이 어떻게 표출되는지와 같은 ‘외적 정보’에 의지한다. 그 실체에 대한 이야기는 보다 낮은 위치의 집단이 기대하는 환상을 통해 흐려진다. 이렇게 맹신하기에 알맞은 계층의 신화가 만들어졌다.
  팔복예술공장 황순우 총괄감독은 “2019년을 함께한 7인 작가의 입주보고전을 통해 많은 분들과 이들의 예술적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는 자리가 될거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7일 금요일에 예정되어 있던 전시 오프닝 행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우려에 따라 취소됐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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