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오래 보면

오피니언l승인2020.02.19l15면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정근식 국민연금공단
 
나그네가 어느 유명한 성당을 지날 때 종소리가 들렸다. 종소리가 은은하여 소리가 끝날 때까지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다음날도 나그네는 은은한 종소리가 들었다. 나그네는 종을 누가 치는지 궁금했다. 분명 건장한 신부님이 종을 치고 있겠지 하는 상상을 하며 종이 있는 성당 꼭대기로 올라갔다. 종을 치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곳에는 등이 굽고 말을 잘 못하는 장애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종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본 뒤부터 나그네는 그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종지기의 고통소리로 들렸다고 한다. 이처럼 같은 소리임에도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의 느낌이 다르다.
 문학모임에 이름이 꽤 알려진 회원이 있다. 나는 전부터 그 작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대표였는데 글 솜씨 역시 기업경영 못지않게 뛰어났다. 인터넷에 그의 작품과 문학상 수상 기록이 다음 페이지까지 나올 정도로 많이 알려진 작가였다. 그가 회원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모임에 가입하겠다고 신청하는 예비 작가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나는 그와 문학모임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수업에 임했다.
 문학모임에서 나이가 많았던 그는 회장을, 젊은 나는 총무를 맡았다. 나는 그와 함께 문학모임을 이끌어가는 것이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그를 함께 수업을 하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나는 늘 그에게 깍듯하게 대우했고, 그와 대화했던 이야기를 글로 쓸 정도로 한때 그는 나에게 우상이었다.
 그와 만남이 잦을수록 나는 성당 종지기를 본 나그네의 기분이 들었다. 성당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리지 않고 종지기의 비명으로 들리는 나그네가 되어 가고 있었다. 무엇이든 가까이서 보면 정확히 볼 수 있다. 그는 돈이 많고 글 솜씨가 뛰어났지만, 기업의 대표자리에만 있었던 탓인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나는 그에게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자 기대가 실망으로 변했다. 다른 회원들 역시 그의 행동에 불만이 많았다. 그는 자신이 다른 회원과는 다르다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존심이 상했던 몇몇 회원들이 그에게 모임에서 탈퇴를 요구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결국 그는 회원들에게 사과를 한 뒤 마무리는 되었지만, 전과 다르게 편한 관계가 되지 못했다. 차라리 그를 멀리서만 보았더라면 지금보다는 더 괜찮은 작가로 기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산행 길에 동행한 일행과 그림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의 화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이었다. 나는 그림에는 문외한이라 모나리자라고 하면 여인의 미소 정도만 기억하고 있었다. 동행한 일행은 모나리자 그림 뒷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모나리자 그림 배경을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어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산행 중에 잠시 쉬는 시간에 휴대폰으로 모나리자를 조회한 뒤 확대해 보았다. 모나리자 미소 뒤에는 시냇물과 다리가, 꼬불꼬불한 산길과 산도 있었다. 어느 한적한 산촌의 모습이었다. 그림 역시 가까이서 보면 멀리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성당 종지기를 본 나그네의 판단이 옳았을까. 일 년에 몇 번 만나는 작가에 대한 판단이 옳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어쩌면, 성당의 종지기는 깊은 신앙심으로 그 일을 자처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성당에서 그의 가족 생계를 위해 종지기란 일을 만들어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런 눈으로 본다면 유명작가에 대한 판단 역시 마찬가지다. 모나리자의 미소만 보고 배경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의 한두 가지 실수만 보고 전부를 판단하지 않았을까. 내 눈에 비친 작은 실수만 보고 그의 장점을 보지 못하지 않았을까. 수십 년 동안 기업을 무난하게 경영했던 사람이라면,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장점이 많이 있었을 터인데.
 가끔 소문이나 선입감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할 때가 있다. 타인의 부정적인 생각을  여과 없이 받아들일 때가 있다. 멀리서만 본 탓이다. 멀리서 보면 보이긴 하지만 정확히 보이지는 않는다. 희미하게 보인다. 아름다운 아내 얼굴조차도 잘 알아볼 수 없다.
 멀리서 보면 안 보이는 것이 가까이서 보면 잘 보인다. 그것보다는 가까이서 오래 보면 더욱 잘 보인다. 외모만 보이는 게 아니다. 가까이서 오래보면 사람의 따뜻한 온기가 그 사람의 애틋한 사랑까지 또렷이 보인다.

오피니언  opinion@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여백
여백
전라일보소개기사제보광고안내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5038]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로 75  |  대표전화 : 063)232-3132  |  팩스 : 063)284-070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유 동 성
Copyright © 2020 전라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