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익산박물관(관장 신상효)이 상설전시유물을 소개하는 도록 <국립익산박물관>을 펴냈다.
  도록은 1부 ‘익산과 전북 서북부의 역사와 문화’, 2부 ‘백제의 마지막 왕도, 익산’, 3부 ‘미륵신앙의 성지, 미륵사’로 구성됐다.
  모두 367쪽에 걸쳐 글과 291개 도판, 칼럼과 발굴현장 사진 등을 실어 익산의 역사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제1부 ‘익산과 전북 서북부의 역사와 문화’에서는 ‘방과 포용의 땅, 익산’, ‘마한과 백제시대의 익산’, ‘백제 멸망 이후의 익산’ 등 3편으로 나눠, 구석기시대부터 후백제까지 다루고 있다.
  뚜렷한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으로 한국 역사의 주인공이 되기에 마땅한 익산을 무대로 한 전북 서북부의 개방과 포용의 역사를 담았다.
  견훤이 후백제를 세우고 찾은 곳이 금마. “백제의 계승자를 자처한 견훤인 만큼백제 후기의 흔적이 역력한 익산지역의 의미를 그 이전까지 소급하여 그 일대를 중심으로 한 후백제 건국을 정당화하고 싶었을 것이다.”는 김민경(국립중앙박물관)의 컬럼 ‘안승과 견훤, 익산을 거쳐가다’도 흥미를 끈다.
  제2부 ‘백제의 마지막 왕도, 익산’에서는 왕궁리 유적, 제석사지, 쌍릉을 중심으로 완숙하고 우아한 백제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백제가 그린 미래를 살폈다.
  백제의 역사에서 6세기 후엽~7세기 중엽의 익산만큼 논쟁적인 시공간은 없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설화, 미륵사지 석탑의 금제사리봉영기와 사택적덕 왕후, ‘백제무광왕조’와 제석사지, 무왕의 무덤으로 다시 부각되고 있는 쌍릉 등 하나하나가 백제사 연구의 치열한 논쟁거리다. 아직 모든 연구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학설은 없다. 하지만 ‘백제가 준비한 새로운 미래가 익산’는 메시지는 유효하다.
  제3부 ‘미륵신앙의 성지, 미륵사’에서는 백제 최대의 사원 미륵사, 미륵사지 석탑의 건립과 수리, 출토 자료로 본 미륵사의 풍경 등을 실었다.
  백제 최대 규모의 사역을 자랑하는 ‘미륵사’는 왕실의 안녕과 중생의 구제를 기원하며 건립된 사원이다. 미륵사라는 절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백제 미륵신앙의 성지다.
  하지만 백제 멸망 후 미륵사는 변화를 겪는다. 전란 등으로 인한 화재 등으로 소실되고 중건되기를 반복하다가 사역이 줄었고 조선시대에는 현 미륵사지의 북쪽구릉 일부로 축소되는 양상을 보였다.
  17세기 미륵사 일대에 서원이 건립된 기록이 있고 18세기 지도 ‘비변사인방안지도’에는 미륵사지 석탑 북쪽에 2개의 서원이 있다. 미력면은 미륵사지가 있는 곳으로 사원 표시가 없고 단지 탑만 그려져 있어 당시 이미 폐사되고 사지로만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병호(국립중앙박물관)는 특별 논고 ‘익산의 백제 문화유산 연구 110년:1910~2020’를 통해 일제강점기 익산에 대한 고적조사, 해방 이후 익산의 유적 발굴과 정비, 한반도 최대의 사원 미륵사지의 발굴과 정비, 백제왕궁의 흔적이 남아 있는 왕궁리 유적의 발굴, 미륵사지 석탑의 수리와 쌍릉의 발굴을 주제로 고도 익산의 유적 발굴사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이밖에 도판목록, 참고문헌 등을 부록으로 더했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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