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 ‘옹고집전’에 나오는 진짜 옹은 욕심 많고 인색하며 불효한 인간이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금강산 도사가 가짜 옹을 만들어 동네 사람들과 함께 진짜 옹을 궁지에 몰아넣었고 마침내 진짜 옹은 참회하고 새 사람이 된다는 게 ‘옹고집전’ 주요 줄거리다.
  하지만 ‘권선징악’이라는 일반적인 시각을 넘어 옹고집이 사회적 ‘희생양’일 수도 있다는 논문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안동대 국어국문학과 신호림 교수는 논문 ‘<옹고집전>에서 재현된 조선 후기 향촌사회의 도덕경제와 공존의 의미’를 통해 조선 후기 향촌사회에서 ‘공존’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함의를 고찰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옹고집전>이 시공간적 배경으로 삼은 조선 후기 향촌사회는 도덕경제가 작동하고 있었다.
  도덕경제는 농민이 이윤의 극대화보다 위험의 극소화에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호혜성의 규범’과 ‘생계에 대한 권리’라는 두 가지 원칙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를 존속시키게 한다. 하지만 이런 특성 때문에 경제력의 재분배라는 사회적 기조에 따르지 않은 구성원에 대해서는 공동체의 가차 없는 처벌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옹고집전>은 이런 도덕경제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옹고집을 향한 사회적 살해는 희생제의의 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옹고집을 희생양으로 삼아 공동체의 위기를 극복하는 서사적 양상을 보여 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를 교정의 서사와 연결시킴으로써 옹고집을 향했던 공동체의 만장일치적 폭력을 겉으로 드러낸다. 옹고집은 누구나 공동체의 규범에서 벗어난 개인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공동체 밖으로 축출할 수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인물이다.
  심 교수는 “공동체가 위기나 분열을 겪을 때, 그 책임을 통째로 전가시킬 수 있는 희생양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모두 ‘잠재적인 박해자’가 된다. 모두가 박해자이며 동시에 희생양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옹고집전>이 보여 주는 공존의 이면에는 만장일치적 폭력을 초석으로 삼아 쌓아 올린 일시적인 평화와 조화가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 논문은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학술지 <공존의 인간학> 제3집에 실려있다.
  <공존의 인간학>은 전주대 인문한국플러스(HK+)연구단이 연 2회 발간하는 인문학 학술지로 지난해 창간호와 제2집에 이어 세 번째 발간됐다.
  제3집에는 <탈유교사회의 문화현상과 ‘공동체’>라는 주제의 기획논문 3편과 일반논문 4편, 총7편의 논문이 엄격한 심사를 거쳐 게재되었다.
  기획논문으로는 상하이대학 문화연구학과 왕샤오밍(王?明) 교수의 <‘소인배’의 시대 ?오늘날 중국인의 정신과 문화 상황>과 안동대 국어국문학과 신호림 교수 의 <『옹고집전』에서 재현된 조선 후기 향촌사회의 도덕경제와 공존의 의미>, 그리고 중국 연변대학교 사회학과 허명철 교수의 <디아스포라의 정체성과 조선족 공동체의 역사 귀속>이 포함되었다.
  일반논문에는 전북대 사학과 하우봉 명예교수의 <18세기 초엽 일본 소라이문파(?徠門派)와 조선 통신사의 교류-다자이 다이(太宰春台)의 『한관창화고(韓館倡和稿)』를 중심으로>와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아라키 가즈노리(荒木和憲) 교수의 <조일 강화 교섭 과정과 정탐사(偵探使)>, 일본 고쿠시칸(國士館)대 유은경 강사의 <나카라이 도스이의 『계림정화 춘향전』을 통해서 본 조선 인식>이, 마지막으로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김성수 교수의 <1910년대 한의학의 전회(轉回) -전통(傳統)에서 회통(匯通)으로의 변환>이 실렸다.
  한편 앞서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 HK+연구단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자료총서, <일제강점기 유교단체 기관지 기사목록>과 <전라남도유도창명회>를 발간했다.
  첫 번째 자료총서에는 일제강점기 「경학원잡지」를 비롯하여 중앙의 유교단체인 대동사문회, 유도진흥회, 조선유교회, 조선유도연합회에서 발행한 기관지 5종과 지방의 유교단체인 강원도유도천명회, 전라남도유도창명회, 충남 홍성의 유교부식회, 개성명륜회에서 발행한 기관지 5종의 기사별 세부목록을 수록하였다.
  두 번째 자료총서에는 일제강점기 유교단체 기관지들 가운데 지방 단위 유교단체의 대표격인 전라남도유도창명회에서 발행된 기관지, 「창명」 1~5호의 원문을 비롯하여 수록기사의 세부목록, 각 기사들에 포함된 인명의 색인어까지를 한 데 모았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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