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농업연구사
지난해 농산물 원산지 표시 위반으로 적발된 업체는 4004곳. 전년 대비 4.6% 증가한 건수다. 최근 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UPOV)을 중심으로 상업용 품종의 배타적 권리가 강화됐지만 국내에 유통되는 주요 농산물이나 농산물 가공식품의 원산지를 속여 파는 일이 적발되고 있다. 소비자는 안심하고 먹거리를 구입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며, 올바른 정보가 표기된 국내 품종이 원활히 유통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할 종자 유통 관련 기술은 국가 경쟁력의 척도가 될 만큼 중요해지고 있다. 현재 유통되는 농산물 정보는 모양이나 색 등 표현형 정보에 국한되어 있다. 수입산과 구별할 수 있는 고유한 유전정보나 몸에 좋은 기능성분 등 소비자가 궁금해 하는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의 주민등록증처럼 대상을 정확히 식별할 수 있는 신분증 시스템을 종자 관리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국립식량과학원 고령지농업연구소에서는 종자의 유전형, 표현형, 기능성분 정보를 한곳에 담은 ‘종자신분증’을 개발했다. ‘종자신분증’은 사람의 주민등록증과 유사하다. 사람의 이름은 작물의 품종명으로 표기되고, 증명사진은 종자 모양이나 식물체의 꽃 사진으로 표현된다. 개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지문은 종자의 유전형 바코드로 나타낸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해당 품종 및 유전자원을 99.9%의 정확도로 식별할 수 있다. 국산으로 둔갑하는 농산물 부정유통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으며, 콩에 들어 있는 이소플라본, 메밀의 루틴 등 우리 몸에 좋은 기능성분 정보도 제공해 기업체나 소비자가 우리 농산물을 상품화하거나 구매하는데 있어 정확하고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종자신분증’이 구현되려면 작물의 품종별로 모양, 크기, 색깔 등의 표현형 항목과 기능성분 함유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해당 품종에만 존재하는 염기서열 정보를 바코드로 표현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알고리즘 작업이 필요하다. 이렇게 구축된 종자신분증은 QR 코드를 통해 구현되고 일반인들은 스마트폰으로 종자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종자신분증’은 디지털 농업분야에서 종자 정보의 빅데이터를 표준화하고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농산물 유통관리 시스템이다. 나고야 의정서 유전자원법 시행 등 국가 별 생물 유전자원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사람, 동물뿐만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농산물에도 신분증이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종자신분증을 활용한 농산물 유통 관련 기술로 세계 종자 시장에서 우리 유전자원을 보호하고 소비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며, 우리 농산물 활성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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