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멈춰만 있을 것 같던 비닐하우스의 시계는 정오를 향해 가고 점심시간이다. 막내인 ‘파넷’이 길게 늘어진 그림자와 함께 자건거를 끌고 숙소가 있는 마을로 향한다.
▲ 비봉이 맺어준 '천생연분' 천분안, 뜯흔 부부
▲ 상추도 모이면 무겁다! 어느새 빼곡하게 채워진 상추 박스를 입구에 옮기고 있다.
▲ 상추 한 장 한 장이 모이면 '소'가 됩니다.
▲ 아삭아삭한 푸른 상추가 빼곡한 완주군 비봉면 유재덕씨 상추농가 비닐하우스에서 6명의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상추를 수확하고 있다.
▲ 한 장 한 장 상추를 차곡차곡 개다보면 어깨가 결리고 무릎도 쑤시지만 동료들과 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며 하는 작업이라 견딜 만하다.

희망!
그것은 노력으로 만드는 것일까요? 아니면 인내로 쟁취하는 것일까요?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모습은 피나는 노력으로 일상처럼 비치는가 하면 자신을 질책하는 고통의 연속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끝에는 분명 ‘희망’이 있습니다. 그들도 잘 알고 있지요. 천진난만한 미소는 희망이 현실로 다가오리라는 자신감의 발현입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카메라 렌즈를 보며 검지와 중지로 ‘V’를 표시하며 환하게 웃는 스물두 살 케우와 친구의 모습에 손은 셔터를 누르고, 마음은 절로 엄지를 치켜 올립니다.
머나먼 소망의 땅 캄보디아에서 날아온 그녀들이 없었다면 완주군 비봉면의 상추도 없었겠지요...
‘고마워요’

일상!
아침 7시부터 오후 6시, 그리고 작업장인 비닐하우스.
새파란 상추를 뜯어 차곡차곡 개고 박스에 포장하는 일이 하루 일과입니다.
무거운 물건을 나르는 것도, 작업환경이 열악한 것도 아니지만, 종일 밭에 앉아 상추를 뜯는 일상의 반복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요.
한 장 한 장 상추를 개다보면 어깨가 결리고 뻑적지근합니다. 일어나면 무릎이 쑤셔 “아이고~”라는 곡(哭)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그래도 고국의 동료들과 웃고 떠들면 피로가 싹 사라집니다.

격리!
코로나19 쓰나미는 완주군 비봉면의 상추 재배 농가도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유일한 즐거움인 ‘휴일 나들이’를 못하게 돼 못내 아쉽습니다. 스물 두 살의 ‘케우’ 양은 “지난해 한국에 처음 와서 본 송광사 벚꽃의 환상적인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며 “올해 꽃구경은 숙소 앞을 노랗게 물들인 개나리로 달래고 있다”고 해맑게 웃습니다.

인연!
완주군 비봉면엔 60여 농가가 상추를 출하하고 있습니다. 상추 농사는 완주군 용진이 유명한 데, 유재덕 씨가 비봉면에 뿌리를 내리며 한 두 농가씩 늘어나더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10여 년 전인 2008년에 유 씨는 캄보디아 여성 ‘파이쇼칸’과 결혼했지요. 이런 작은 인연이 조금씩 커지더니, 비봉면을 70여 명의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일하는 속칭 집성촌으로 변하게 만들었지요. 지금은 현지 주민과 이방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로 바뀌었습니다.
젊은이 구경이 힘들었던 비봉면에 캄보디아 노동자들은 새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멈춰 있던 마을의 시계가 다시 째깍째깍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낯선 한국 땅을 터전 삼아 꿈을 키워가는 이들에게 희망은 희망을 낳는 선순환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향!
완주군에서 흘리는 땀은 저 멀리 고향인 캄보디아에서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6년째 생활하며 30만 원 가량의 용돈을 뺀 나머지를 고국에 송금하고 있는 ‘파넷’ 양은 지난해 소를 사고 고향마을에 땅도 마련했습니다. 멈춰 있을 것만 같이 반복되는 시간 속에 그렇게, 아련한 꿈은 구체적인 희망으로 다가와 살랑살랑 속삭입니다. “조금만 참으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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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분안(48), 뜯흔(36) 부부

완주군 비봉이 맺어준 천생연분이다. 십 년 전에 완주군의 한 공장에 취업한 ‘천분안’ 씨는 지난 2015년 비봉 상추농가에 와서 일하고 있던 ‘뜯흔’ 씨와 캄보디아인 친목 모임에서 만나 사랑을 싹틔웠다. 운명이란 벼락처럼 갑자기 다가오는 것이다. 신랑 천분안 씨는 비봉 상추농가로 이직을 신청해 결혼에 골인했고, 부부가 한 곳에서 일하게 되는 특별한 행운을 만들었다.
농장주인 유재덕 씨는 이들이 캄보디아에 가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오도록 한 달간의 휴가를 내주며 축복해 주었을 정도.
남편 천분안 씨는 2021년까지, 부인인 뜯흔 씨는 2023년까지 한국에 체류할 수 있어 내년에는 생이별을 해야 하는 신세이다. 그래도 이들 부부는 “그 정도 아픔은 기꺼이 감내할 수 있다”며 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루하루 소중한 시간을 쪼개 쓰고 있다. 고향에 돌아가면 미뤄왔던 가족계획과 준비해 둔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기에….

글·사진/장태엽기자·mode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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