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용 전주시 인권담당관

매일 모든 방송매체, SNS의 내용이 코로나19, 4.15총선, 그리고 성착취 단체채팅방 사건이다. 성범죄 피의자 최초로 ‘박사’라 불리는 이의 신상이 공개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성착취방 주요 운영자들의 닉네임, 그리고 60여개 대화방에 참여한 26만명 모두 공범자로 지목하고 이들 모두의 신상공개와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26만명이라는 숫자가 온라인 공간에서 서로 낄낄대고 있었던 것이다. 휴대폰과 컴퓨터를 조작하며 엄청난 죄를 지었다. 이들은 악마도 아니고, 늑대도 아니다. 선량한 이웃의 얼굴을 하고 있는 주변의 우리들이었다.

 우리는 현재 원하던 원하지 않던 상관없이 디지털 공간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평판이 형성되고 정보가 노출되는 디지털 환경에서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관심분야, 정치적 지향,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족은 몰라도 SNS 친구는 알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온라인 공간에서 누군가의 출신 지역과 학교, 가족과 친구를 알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디지털 세계에서 벌어지는 성범죄는 더 이상 증강현실 속 괴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어떠한 형태의 처벌도 있어서는 안된다. 필자는 범죄자의 신상공개와 얼굴공개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박사’라 불리는 성범죄 피의자의 얼굴과 신상이 공개되어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래서 화가 풀렸는가! 잔혹한 중대범죄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언제나 뒤따르는 게 있다. 범죄자의 신상공개 요구다. 하지만 범죄의 발생은 사회구조적 문제와 맞닿아있는데 신상공개는 문제의 본질을 가린 채 파렴치한 개인의 일탈에만 주목하게 만든다.

신상공개 제도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도입되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범죄자의 신상을 알려줄 테니 알아서 조심하라.’는 식으로 작동해왔다. 강력사건이 터질 때마다 강호순과 조두순 같은 괴물들을 엄벌하겠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주목할 일은 바로 절대 이러한 범죄가 다시는 그 나이 때 호기심과 실수였다는 걸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심각한 인권침해이며, 폭력과 범죄의 문제로 제대로 다루고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체계를 정비해야 하고, 가해자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하며, 피해자의 회복을 지원하는 공적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런 단체채팅방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해서는 안된다.”라고.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질문이다. 고령의 남성어르신들이 복지관에서 아무렇지 않게 성적농담을 하는 그 문화! 밥을 준비하고, 잡다한 일들을 거드는 일은 여성 몫이라는 고정된 성별 역할! 성별 고정관념! 놀 때는 여자가 있어야 분위기가 산다는 성적 대상화! 내 딸인데 내 마음대로 만지지도 못하냐는 그 경계 없는 감수성! 주변에 버젓이 성행하는 성매매업소! 선택하면 언제든 가능한 노래방 등 유흥주점의 도우미문화! 어젯밤 감성주점에서 만난 여성의 몸을 이곳저곳 평가하는 끼리끼리 그 남성문화! 너무나 쉽고 자연스럽게 경험하고 알아가고 몸에 배어버린 그 남성문화에 대해 나는 아니다. 나는 모른다라고 선을 긋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 아버지세대도 그랬고, 나도 그 문화에 참여하고 있고, 나의 아들도 그러할게 뻔히 보이는 지금의 이 문화를 바꿔야 한다. 심각한 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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