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가 가운데 ‘어사 장님모 행차 허신다’라는 대목에서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셔서 춤을 추시다가 넘어졌어요. 나중에 들으니 맘 졸이고 듣다가 ‘이젠 됐다’는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서 그랬다고 합니다.”

쟁쟁한 심사위원들 앞에서 정정렬제 ‘춘향가’를 6시간 완창을 한 명창 모보경(56·전북도립국악원 교수)이 전라북도무형문화재로 지난 3월 예고됐다.

지난 10일 국악원 교수실에서 만난 모보경은 문화재 심사 당시 자신보다 더 맘을 졸인 어머니 최승희 명창 얘기부터 꺼낸다.

다른 제자들에게는 칭찬도 잘하는 어머니는 유독 모보경 칭찬에 인색했다.

이제까지 내내 자신에게 한 칭찬은 ‘쓰것다’ 정도로 명창 어머니 아래 소리 공부가 만만치 않았다. 그런 어머니에게 ‘잘했다’는 칭찬을 받은 것은 2009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2009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공연자리. 정정렬제 ‘춘향가’를 7시간 가까이 부르고 무대를 내려오며 들었다.

어머니 최승희 명창은 지난 1992년 전북무형문화재 2호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모보경은 대를 이어 전북무형문화재가 되는 것이다. 

이들이 부르는 ‘춘향가’는 정정렬-김여란으로 이어지는 바디로 전국에서 가장 온전하게 전승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정렬제는 판소리 여러 바디 가운데 제일 어려운 축에 속한다.

고수대회에서 모보경 명창을 초청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정렬제 소리꾼이 많지 않아 웬만한 고수는 정정렬제를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 사실상 공부가 더 필요한 고수들을 일찌감치 골라내기 위함이라는 우스운 얘기도 있을 정도다.

모보경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소리를 들으며 자랐지만 소리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전남 해남 서국민학교 3학년 때 학교 농악단에 들어가 설장고를 배웠다. 당시 고 추정남(고법 전남무형문화재) 명인은 당시의 모보경을 매우 예뻐했다고 한다.
경기도 고양중학교에 진학해서는 김중자 무용단에서 설장고를 배우며 무용에 빠졌고 현재 국악예고 무용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작은 신장은 무용가를 꿈꾸던 그에게 결정적인 약점이었고 결국 성악과로 옮겼다.

그는 여기에서 여러 스승을 만난다. 김월하 명창에게 가곡과 가사를, 정권진 명창에게 ‘심청가’를 배웠다. 묵계월 명창과 함께 했던 지인들에게는 경기민요와 잡가를 배우면서 소리 공부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졌다.

이때 거문고를 가르치던 김영재 명인을 만난다. 선배들의 장단과 학교 관현악 장단을 치면서 기악 파트의 모든 장단을 꿰며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1983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국립창극단에 입단하게 된다.

“첫 월급이 13만6,540원이었어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대학 진학 대신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기에는 턱없이 적었어요. 그래서 그만두고 전주에 내려오기 전까지 요즘 말로 ‘프리랜서’로 활동했어요. 이때 이장호 영화감독을 만나 의남매가 됐어요.”

당대 최고의 영화감독과 이보희라는 여배우와 함께 영화음악 작업도 하던 모보경은 킹레코드사의 제안으로 음반을 취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모보경은 어머니의 간곡한 요청에 외도를 마치고 1998년 전주로 내려온다. 전북도립국악원 야간반 교수로 인생 2막을 시작한 것이다.

그의 타고난 소리가 인정받은 것은 1999년 전국완산국악대제전 판소리 부문 장원(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면서 부터다.

“어머니가 1998년에 위암수술을 받았어요. 어머니가 병석에 들자 많은 사람들이 ‘정정렬제’ 명맥이 끊겼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대회에 나간 거죠. ‘어머니 소리와 똑 같다’는 국악인들 칭찬을 받고 상을 탔어요.”

다음해에는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서 쟁쟁한 소리꾼과 경쟁한 끝에 대통령상을 받아 명창 반열에 올랐고 20년이 지난 현재 전북무형문화재 인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잘 모시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소리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고. 많은 제자들을 키우고 싶다. 정정렬제는 다른 바디에 비해 어렵다고 소문이 나서 그런지 제자가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정정렬제를 배운 사람들에게는 전국적으로 더 많은 길이 열려 있다. 정정렬제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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