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한국미술계 사상 최고의 상금 1억 원을 내건 '한국작가상'이 탄생했다.
거액의 상금으로 화제를 일으켰던 한국작가상의 첫 수상자로 유휴열(당시 67세)이 선정됐다.

1982년 전주 금하미술관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가진 이후 전주에 머물며 작업에 매진하던 그가 전국 미술계에 이름 석 자를 알렸다.

그런 그가 이제는 자신의 이름이 건 ‘유휴열 미술관’(관장 유가림)을 문을 연다.
오는 21일 공식적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미술관 입구에 위치한 ‘돌담미학’은 민속놀이 가운데 하나인 성곽밟기 풍속을 담아낸 작품이다.
돌쌓기 장인 곽동만 선생이 쌓은 돌담위에는 그를 대표하는 연작 시리즈 ‘생.놀이/춤’이 돌담과 하늘을 배경으로 흥겹게 놀고 있다. 

카페와 이어져 있는 메인 전시장 규모는 30평이 넘지 않는 규모다.
이곳에서는 현재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향후 전시장에서는 1년에 네 차례 다양한 작품들이 순환 전시된다. 이후 전북청년미술상 수상자들의 작품들도 별도로 만날 수 있는 기회도 고민하고 있다.

생각보다 작은 공간이지만 전시장은 미술관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5,000여 점의 작품이 빼곡히 보관돼 있는 3채의 작품 수장고를 비롯해서 작업 공간, 작가 공간 등 내부 시설과 외부 전시공간, 그리고 건물을 둘러싼 바람길과 실개천도 미술관의 일부다.

또 방문객들에게 여유로움을 선사하는 ‘카페 르 모악’도 미술관에서의 휴식을 유혹한다.

“구이 허허벌판에 땅을 파고 살림집과 작업실을 지은 지 33년, 10년 뒤에 갤러리를 짓고 다시 20년 뒤 수장고를 지었다. 논과 밭 사이에 덜렁 세 그루, 감나무 깨죽나무 팽나무만 있던 이곳에 해마다 봄이면 나무와 꽃을 심었는데 지금 우리 마당에 있는 나무들이다.”(유휴열)

공공기관의 도움 없이 오직 작가의 힘으로만 완성한 미술관이란 점도 독특하다.
작가는 1980년대 후반 미술관이 들어선 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2000년 이곳에 ‘미술관 모악재’라는 이름으로 처음 미술관을 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내외부 시설을 정비해 ‘유휴열 미술관’으로 다시 선보이는 것이다.

“나무가 자라는 만큼 해를 거듭할수록 작업실과 수장고에는 작품이 쌓아 갔다. 평생을 오로지 작품에만 매달린 사람만큼 행복한 삶이 없을 텐데 달리 생각하면 나만의 즐거움이었고 욕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유휴열)

미술관 운영은 사단법인 모악재가 맡는다 .
모악재는 전북지역 문화예술이 고유의 개성을 가지고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 고민하고 전북지역 문화예술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문화예술단체를 표방하는 법인이다.

모악재의 여러 사업 가운데 ‘전북청년미술상’ 복원이 눈에 들어온다.
‘전북청년미술상’은 유휴열이 1990년 만들어 2000년까지 10회 수상자를 냈던 상이다.

당시 청년작가를 주목한 유일한 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선정된 작가들은 이후 한국 미술계에서 탄탄한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역대 수상자들은 임택준(서양화), 강용면(조각), 이반(설치미술), 유경상(도예), 고 지용출(판화), 이철규(한국화), 홍선기(서양화), 차유림(서양화), 고보연(설치미술), 이정웅(서양화) 이다.

‘전북청년미술상운영위원회’를 만들어 매년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45세 미만의 청년작가들 중에서 선정할 계획이다.

“이제는 우리 가족의 나무와 작품으로 국한시키기 보다는 그림을 좋아하고 나무와 꽃과 바람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이곳을 오픈한다. 이 공간이 바쁘고 지친 이들에게 편안함을 주었으면 좋겠고 다불어 지역의 문화예술에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유휴열)

벨지움 국제회화전 특별상(루벤스상·1982), 예술평론가협회 최우수 작가상(1986), 마니프 국제아트페어 대상(1997), 목정문화상(1999), 제1회 한국작가상(2016), 제1회 전북예술대상(2019)을 수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부산·광주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SAN 뮤지엄, 금호미술관, 성신여대 캠퍼스미술관 소장.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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