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국민연금공단

 운전을 하다보면 기분 좋을 때가 있다. 혼잡한 시내 도로를 시원하게 달릴 때다. 직진 신호를 연속으로 받아 질주를 할 때면 마음이 상쾌해진다.
 병원에 진료 받으러 가는 길이다. 직진 신호를 연속으로 받아 시원하게 달리고 싶은데 동시신호 지역인데도 거북이 걸음이다. 병원 예약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곡예운전 충동이 왔지만 참았다. 요즘 나는 운전을 할 때 솟아나는 추월 욕구를 참는 연습을 하고 있다.
 두해 전, 갑상성항진증 진단을 받았다. 자가 면역 질환이다. 진단을 받기 한두 달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 떨림이 심하고 몸무게가 줄었다. 당시 20키로 마라톤을 달린 뒤라 무리한 운동 후유증이라 생각하고 무시했는데, 계단을 내려갈 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난간을 잡지 않고서는 계단을 내려갈 수가 없었다.
 갑상선항진증이었다. 갑상선 호르몬 조절하는 기능에 이상이 생겼다. 게다가 간 기능까지 좋지 않다며 의사는 수술을 할 것인지 약으로 치료할 것인지는 약을 한 달 정도 먹어보고 판단하자고 했다.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으로 두툼한 약봉지를 받아 병원을 나왔다. 
 난데없이 날아든 갑상선항진증은 몸보다 마음을 더 강하게 뒤흔들어 놓았다. 고속도로를 운행 중에 갑자기 높은 산맥에 막힌 기분이다. 자신감이 없어지고 삶의 방향도 잃어버렸다. 퇴직 준비로 준비하던 자격증 공부도 포기했다. 인터넷으로 병에 좋다는 음식과 합병증을 확인하고 집안에서는 환자 행세까지 했다. 평소 운동으로 건강관리를 했는데 육신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모양이다. 60년 가까이 직진만 하던 내게 갑상선 항진증은 2년 전 황색신호등으로 다가왔다.
 황색신호등은 붉은 신호등이 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전조등이다. 붉은 신호등은 갈 수 없는 위험한 신호이니 다음 신호를 받아 주행하라는 주의등이다. 황색신호에 조심해야 된다는 것을 뻔히 알지만 성격 급한 사람들은 황색신호를 무시하고 달려가다가 끔찍한 사고를 내기도 한다.
 신호위반으로 교통사고가 났다는 소식이 뉴스에 나왔다. 어느 소도시 유원지 입구 사거리에서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리던 레미콘 차량이 승용차를 덮친 사고다. 다행히 레미콘 차량이 뒷좌석을 덮쳐 운전자가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뒷좌석에 가족이라도 타고 있었다면 대형사고가 날 뻔했다. 레미콘 운전자가 황색신호등을 무시하고 직진하다가 발생된 사고였다. 오늘처럼 신호위반으로 나는 교통사고가 1년에 2만 5천 건 이상이 된다고 하니 운전하는 사람들은 황색신호의 의미를 새길 필요가 있다.
 도로의 신호등처럼 사람에게도 황색신호등이 있다. 큰 질병은 대부분 초기증세가 있다. 고향 친구 두 명이 얼마 전 암진단을 받았다. 한 친구는 대장암 말기고 다른 친구는 폐암 초기이다.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은 친구에게 분명 황색신호인 혈변이나 변비가 있었을 터인데.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건강검진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에 갔을 때는 벌써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 만약 그가 혈변이나 변비인 황색신호가 왔을 때 병원에 갔었더라면 쉽게 치료할 수 있었는데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 반면에 폐암 진단을 받은 친구는 매년 건강검진을 했다. 내시경과 초음파까지 검사를 했다. 이번에 수술한 폐암도 건강검진에서 발견되었다. 다행히 폐암 0기에 해당되어 수술하고 간단한 항암치료 후 지금은 정상생활을 하고 있다. 
 차가 병원 앞에 거의 도착을 했다. 시간이 늦었다고 진료를 받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늦으면 그 시간에 다른 사람이 진료를 받을 것이고, 그 사람의 시간에 내가 진료를 받으면 될 일이다. 마지막 신호등이다. 직진신호가 황색신호로 바뀌었다. 브레이크에 발을 올려 추월 본능을 누른다. 혹시라도 내 부주의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도로에서 황색신호에 브레이크를 밟듯이 내 몸의 황색신호인 갑상선항진증 치료를 한다. 무리하지 않고 병원에 꼬박꼬박 다니고 약도 잘 챙겨 먹는다. 의사가 피하라는 술과 커피는 멀리하려 노력을 하고 있다. 진단을 받은 지 2년이 지난 지금은 증세가 많이 호전되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손 떨림도 없어졌고 몸무게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잃었던 자신감도 많이 회복되었다. 이제 나는 내 몸의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다. 갑상선항진증을 치료하면서 내 건강의 직진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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