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윤 전라북도의회 문화건설안전위원장

‘국뽕’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전례 없는 코로나 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투명하고 효율적인 대처가 전 세계에 하나의 모범적인 표준이 되면서 국민들의 집단적 자부심이 한껏 고양되자 생겨난 말이다.
아직 진행형이긴 하지만 정부의 대처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고 밖에서도 주요국 정상들과 외신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으니 위기 속에서 오히려 국격이 올라가는 기쁨은 충분히 만끽할 만하다.
특히 이 와중에 전국단위 선거까지 안정적으로 치르는 모습을 지켜본 외신의 반응은 놀라움과 부러움 일색이다. 근대 민주주의를 일으켰고 막강한 국력을 자랑하는 서구의 주요 선진국조차 엄두를 못내는 일을 우리가 해냈으니 말이다.
그러는 사이에 가려진 것도 있다. 제주 4·3항쟁과 4·16세월호의 아픔, 그리고 4·19혁명이 움튼 4월이 그렇다.
생각하면 어느 날 하나도 쉬이 넘길 수 없는 날들이다. 좌익으로 낙인찍어 수많은 양민을 학살한 72년 전 제주의 학살은 아직도 선연한 아픔으로 유족과 제주도민들 가슴에 남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념식에서 “제주 4·3이라는 원점으로 돌아가 그날, 그 학살의 현장에서 무엇이 날조되고, 무엇이 우리에게 굴레를 씌우고, 또 무엇이 제주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전 정부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반가운 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픈 말이기도 하다.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는 것은 결국 70년이 넘게 지났고 세상이 개벽천지 했는데도 아직까지 진실 규명이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긴 70년 전의 일은 고사하고 불과 6년 전의 세월호 참사를 두고도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이제는 그만 잊어야 할 때’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아닌가. 그러니 총선 다음날이었던 4·16 추념이 꽃바람에 흔적도 없이 날려간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살릴 수 있는 꽃다운 생명이 물 밑으로 잠기는 것을 보면서 모두가 내 아이라고 생각하며 아파했는데, 이제 그 단순명료한 가정과 상상력마저 고갈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위기 속에서 국격이 상승하는 자부심도 좋지만 4월이 가려지거나 잊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4월에 빚지고 있고 그 연장선에서 지금의 일상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급 투표율로 한국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 이번 총선도 4·19혁명에서 분출됐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아니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다.
식민지배에서 해방으로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전쟁에 이어서 암울한 독재가 억압하는 상황 속에서 오로지 민중의 힘만으로 독재권력에 맞서 싸우며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4·19의 역사적 성취는 우리가 잊고 있는 ‘또 다른 국뽕’인 것이다.
코로나 속에서도 봄꽃은 어김없이 만개했다. 그러나 제주 4·3과 4·19, 4·16 세월호가 자리한 4월은 희미해지고 있다. 국뽕에 4월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 4월에 오롯이 새겨져 있는 참혹한 실상과 아픔을 직시할 수 있도록 꺼내어 되새겨야 한다. 국뽕은 잠시 뒤로 해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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