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원 국민연금공단

 

고향집에서 어머니와 화투를 친다. 바닥에 작은 담요를 깔고 단둘이 화투를 친다. 번번이 패해 이기려고 작전을 구상하면 어머니는 성화를 낸다. 빨리 치라고 호통을 친다. 광을 먹어야 하는데 실수로 다른 화투를 내 버렸다. 화투를 잘못 냈다고 다시 치려고 하니 어머니는 어림도 없다. 이번 판도 대패다.
 사실, 나는 화투 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친척이나 손님들이 찾아오는 명절에 내가 화투치자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가족끼리 정을 나누는 놀이는 화투보다 윷놀이를 더 좋아한다. 작은 금액이지만 가족 간에 돈이 오가는 것이 싫어서다. 내 화투놀이는 명절 손님들이 원하여 접대 차원에서 일 년에 한두 번 치는 것이 고작이다.
 일 년 전부터 나는 주말마다 고향집에 간다. 요양보호사가 방문하지 않는 주말에 어머니를 돌보아 드리기 위해서다. 식사를 준비해 드리고 약도 챙겨 먹여 드린다. 어머니는 몇 달 전까지 주말에는 늘 경로당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전에 나가서 저녁에 오셨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경로당이 문을 닫은 뒤부터 어머니는 종일 집에만 있었다. 적적해하시던 어머니의 권유로 나는 몇 달 전부터 타짜의 길로 들어섰다.
 어머니는 화투놀이는 프로이다. 경로당 프로리그에서 뛰고 있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어머니는 경로당에서 친구 분들과 대부분 시간을 화투놀이로 보낸다. 점심과 저녁식사까지 경로당에서 해결하고 화투에 매달린다. 주말에 고향집에 와도 어머니의 화투게임 때문에 나는 혼자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 시간에 자격증 준비도 하고 책도 읽고 가끔 낮잠도 잤다.
 경로당이 문을 닫은 뒤부터 친구들을 만날 수 없는 어머니는 주말 내내 나와 함께 지낸다. 나는 말동무도 화투 상대도 되어 드리고 점심, 저녁식사까지 꼬박꼬박 챙기고 있다. 주말 이틀 동안 어머니를 부양하는 일은 나름대로는 힘이 든다. 매주 주중에 식단을 짜서 시장을 보고 식사준비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주부의 삶이 녹녹치 않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가족 챙기기에 바쁜 모든 주부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예전에도 가끔 어머니와 화투를 쳤다. 경로당에 친구들이 오지 않는 날에는 묵혀 두었던 나의 화투실력도 점검할 겸하여 어머니에게 도전을 했다. 아마추어인 내가 경로당에서 전문적으로 훈련이 된 어머니에게는 역부족이었다. 준비해간 동전을 늘 어머니가 가져갔다.
 오전에 어머니와 화투를 한판 치고 점심식사를 하고 고향 뒷산을 올랐다. 고사리를 꺾으러 갔다. 뒷산에 고사리가 많아 지난달부터 고사리를 채취하고 있다. 풀 속에 숨어있는 고사리를  꺾는 기분은 어린 시절 소풍에서 보물찾기 쾌감만큼이나 좋다. 어머니는 직접 산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내가 가져온 고사리를 보시고 대리 만족을 하신다. 고사리를 삶아 말리는 모습을 재미있게 구경하신다.
 고사리를 소쿠리에 말리고 난 뒤 오후의 결전을 시작했다. 화투는 이겨야 맛이다. 모자간의 화투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나의 화투 실력이 늘어 고수들의 게임으로 발전된 느낌이라 충분히 이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어머니도 선을 잡으면 바닥에 펼치는 화투장과 나눠주는 화투장 수를 헷갈려 자주 물어보곤 했는데, 오늘은 물어 보지 않고도 잘 하신다.
 화투는 마술 같은 힘이 있다.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시는데, 기력도 쇠하여 십분만 앉아 있어도 숨이 차 힘들어 하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머니는 화투를 시작하면 다르다. 집중력이 높아져서 아무리 오래 화투게임을 해도 피곤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앉아 계시면 가끔씩 목에 이물감이 생겨 ‘끅끅’하며 목을 가다듬는 증상까지 없어진다. 어머니는 화투를 치면 눈도 초롱초롱해지고 목소리도 우렁차다. 내가 다음 패를 생각하느라 조금한 늦어지면 호통을 치고 혹시나 내가 화투를 맞지 않게 가져가면 기가 막히게 알아채신다. 화투치는 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온몸을 비틀렸는데 어머니는 요지부동이다. 결국 포기하고 내가 그만하자고 비명을 지르자 어머니는 아쉬운 듯 ‘많이 쳤다’ 하시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담요를 치우고 화투도 서랍에 넣었다. 오늘 어머니의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어머니의 치매로 혹시라도 화투실력이 녹슬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걱정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화투를 치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도록 주말마다 내가 타짜가 되어야겠다. 그리고 다음 주말에 올 때는 동전통을 새로운 통으로 바꿔드려야겠다. 어머니가 오래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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