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길 시인의 시집 <날개도 없이 공중에 사는 거미는 행복한가>(천년의 시작)가 ‘시작시인선 324번’으로 출간됐다.

시인의 첫 시집으로 미적 감각과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는 시법을 구사하고 있다.

시적 감각이나 사유의 일반적 과잉을 제어하면서 시적 긴장감과 균형감을 획득하는 것은 이번 시집의 주목할 만한 성과라 할 수 있다.

한편 시인은 역설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감각적 언어로 승화시키면서 미학적으로 완성도 높은 시 쓰기를 보여 준다.

해설을 쓴 이형권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정영길 시에서 역설이란 “속악한 현실에서 얻은 상처에서 자연적, 우주적 이상 세계를 추구하는 정신의 에너지를 얻고자 하는 시적 의지”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시인이 추구하는 세계는 순수한 자연의 세계로서, 속악한 현실을 넘어선 우주적 율려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시집에는 개인적, 역사적 상처로 얼룩진 삶 자체가 시의 모티프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음에도, 시인에게 이러한 상처는 고통이나 슬픔의 표상으로 남아있지 않다. 외려 진실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역설적 에너지로 작용하면서, 자기 자신으로 깊이 침잠하는 성찰의 시간과 마주하게 해준다. 이때 고독은 비로소 상처로 얼룩진 자신의 삶을 진실하게 응시하도록 하며, 시인으로 하여금 삶의 상처를 눈부신 승화의 계기로 삼을 수 있게 해준다.

시인은 198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입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현재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재직 중이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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