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둣빛에 싸인 고택은 꿈을 꾸는 듯 고즈넉하다.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에 있는 국가 민속문화재 26호 김명관 고택. 문화재 지정 당시는 소유주였던 ‘김동수 가옥’이었으나 집을 지은 6대조 김명관의 이름을 따서 2017년 명칭을 변경하였다. 일명 지네산이라고 불리는 청하산을 뒤편에 길게 두르고, 앞으로는 동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어 집터 명당의 기본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고택은 조선 정조 8년에 김명관이 18세에 짓기 시작하여 10여 년에 걸쳐 지은 집이다. 

바깥 행랑채와 연결된 솟을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자그마한 문간 마당에서, 봄바람에 떨어져 눈처럼 깔린 박태기나무 꽃이 분홍빛으로 맞이한다. 아흔아홉 칸 웅장하고 화려한 고택의 안채와 사랑채를 상상하고 들어선 마당은 소박한 얼굴을 하고 있다. 문간 마당 오른쪽으로 난 일각문을 통해서, 본 건물로 갈 수 있는 집의 구조는 모습을 단박에 보여주지 않고 보일 듯 말 듯 궁금증을 자아내며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두 개의 문을 지나야 만날 수 있는 남자들의 공간 사랑채는 계단이 없이 낮은 기단 위에 지어져, 내려다보며 호령하는 위엄을 나타내는 여느 양반집의 사랑채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사랑채 대청마루 왼쪽에 가로질러 있는 난간은 있는 듯 없는 듯 소박하고 무심히 드리워 있어 사랑채 건축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반듯하고 군더더기 없는 사랑채를 지나면 여자들의 공간이 있다. 여자 하인들의 거처인 안 행랑채 왼쪽 처마 밑에 걸쳐있는 눈썹 모양의 중방은 절묘한 아름다움과 순리에 따른 자연미가 있다. 안 행랑채 전면에 있는 안채는 ㄷ자형의 평면 좌우 대칭으로 이루어져 있다. 왼쪽 안방은 시어머니 방이고 대청마루를 지나 건넌방은 며느리 방이다. 좌, 우에는 별도의 부엌이 있고 벽에는 통풍과 환기를 위한 빗살창이 그림처럼 걸려있다. 사랑채 뒤쪽 눈썹지붕 아래 새신랑 방에서 왼편으로 약간 대각선 방향에 며느리 방이 있다. 두 방을 잇는 좁은 통로는 새신랑이 새색시를 찾아가는 사랑의 미로라 할 수 있겠다. 헛담이 살짝 가려준 사랑의 미로는 당시 성리학적 가치가 엄격한 시대지만 인간의 감정을 깊게 배려한 공간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효의 상징인 사당은 신성한 공간이므로 잘 다듬어진 주춧돌 위에 두리기둥을 써서 격을 갖추어 지었다. 조상들의 공간에 영산홍을 심고 담 밖에는 잎이 넓은 후박나무를 심어서 산자와의 경계를 두었다. 

건축가 김봉렬은 “건축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라고 했다. 230여 년 전, 김명관이 20대에 완성한 고택은 현재의 건축가들도 감탄하는 건축미를 갖추었으며 정조시대의 가치를 담아낸 진경건축이라고 하겠다. 봄이 한창인 고택에는 영산홍이 곳곳에 만발해서 사랑채든 안채든, 문이나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은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격을 느낄 수 있었다.

사뿐사뿐 사랑의 미로를 지나, 영산홍이 붉게 수줍은 안채 뒤뜰에서는 신랑 각시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김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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