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우산

오피니언l승인2020.05.20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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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식 국민연금공단

봄비가 마중을 나왔다. 버스를 타고 두 시간을 달려온 시외버스터미널에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버스에서 내린 승객이 뿔뿔이 흩어지듯 바닥에 떨어진 봄비도 길을 바삐 재촉한다. 우산이 없어 택시를 타려다 시내버스에 올랐다. 집근처에 가서 아내에게 마중을 나오도록 할 작정이었다.
 마침 버스가 도착하여 차에 올랐다. 저녁시간이 지났는데 버스가 복잡했다. 차안에 올라서자 습기와 함께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분이 좋지 않는 냄새라 약간 짜증이 났다. 택시를 탈걸 하는 후회가 되었다. 실내 손잡이를 잡고 창밖으로 보이는 희미한 불빛을 향해 고개를 고정시켰다. 버스는 어두운 밤을 뚫고 달렸다.
 집이 얼마 남지 않아 휴대폰을 눌렀다. 전화를 받지 않아 다시 휴대폰을 눌렀다. 신호가 몇 번을 가서야 전화를 받는다. 막내였다. 아내는 외출했고 혼자 있다고 한다. 비를 맞고 갈까 망설이다가, 밤이 늦었지만 빗줄기가 굵어져 철부지 막내에게 마중을 나오도록 했다.
 막내는 초등학교 1학년이다. 첫째나 둘째와는 달리 유별난 개구쟁이다. 병원 응급실에 간 것만 벌써 5번이나 된다. 뜨거운 냄비에 부딪혀 얼굴에 화상을 입기도 했고, 새벽에 심한 고열로 응급실 신세를 지기도 했고, 놀이터 평행봉에서 떨어져 심하게 다친 적도 있다. 그렇지만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은 끔찍하다. 내가 누워 있으면 흰머리를 뽑아주기도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고사리 손으로 다리를 주물러주기도 한다. 아직도 내가 퇴근을 하면 달려와 안기는 귀여운 막내다.
 막내는 신호등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몇 달 전에 내가 퇴근하면서 가져온 연분홍색 우산을 쓰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에 봄비는 여름철 모기처럼 올망졸망 모여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막내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집에는 회갑이나 퇴임기념식에 참석하여 받은 크고 좋은 우산이 많은데, 막내는 찢어진 우산을 들고 나왔다. 다른 우산이라도 가져왔으면 좋으련만 우산 하나만 달랑 가지고 왔다. 막내는 가져온 우산으로 나와 함께 쓰고 갈 요량인 모양이다. 마중 나온 철부지 막내가 기특하여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막내가 들고 온 우산은 일회용 우산이다. 몇 달 전 퇴근길에 비를 만나 천원을 주고 샀다. 연한 붉은 빛이라 보기에는 고급스러워 보였지만 재질도 나쁘고 한사람의 몸을 겨우 가릴 정도로 크기가 작았다. 싼값에 구입한 우산이라 그날만 사용하고 버릴 생각이었으나 비가 오는 날 한 번 더 쓰고 버렸는데, 막내가 예쁘다며 챙겨 두었던 모양이다. 
 막내와 함께 우산을 쓰고 집을 향했다. 다행히 빗줄기가 약해졌다. 나는 막내의 걸음걸이에 맞추었다. 한손에 가방을 들고 나머지 손으로 우산을 들었다. 버스에서 느꼈던 짜증은 사라지고 우산 속에서 막내와 오붓한 시간이 되어 즐거웠다. 빗방울의 상큼한 왈츠 소리를 들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비오는 날 우산이 주는 뜻밖에 아름다운 낭만이다. 언제 막내와 살을 맞대며 걸은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았다. 몇 년 전부터 객지생활을 시작하고는 처음이다.
 갑자기 강한 바람과 함께 빗줄기가 굵어졌다. 작은 우산으로 내리는 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 옷이 젖는 것보다 이리저리 삐져나가는 막내가 신경이 쓰였다. 나는 우산을 들고 막내의 머리위로 떨어지는 비를 막느라 허둥대었다. 이러다가 막내 옷이 모두 젖을 것 같아 자세를 다시 잡았다. 
 손에 들어있는 가방을 겨드랑이에 끼고 막내를 내 몸에 밀착시켰다. 그리고 한손으로 막내를 감쌌다. 우산을 낮게 하고 몸을 밀착시키자 위에서 내리는 비는 이럭저럭 막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바람과 함께 옆에서 들어오는 비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심한 바람이 불자 우산은 뒤집히면서 우산살이 휘어지고 찢어졌다. 찢어진 우산으로 얼굴만 겨우 막을 정도였다.
 집에 도착한 나는 옷을 흠뻑 젖었다. 다행히 막내는 많이 젖지는 않았다. 그래도 작은 우산 속에서 막내와 함께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즐거웠다.
 휘어지고 찢어진 우산을 휴지통에 버렸다. 샤워를 하고 나오다가 휴지통 우산에 눈길이 갔다. 찢어진 비닐과 부러진 우산살이 보였다. 바람이 불어 몇 번 뒤집히면서 새긴 상처이다. 튼튼하고 좋은 우산에 비해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초라한 우산이지만, 휘어지고 찢어지면서도 떨어지는 비를 막으려고 발버둥 치는 우산의 삶이 느껴졌다. 그 모습이 막내 머리 위에 떨어지는 빗물만이라도 막아보려고 발버둥치는 내 모습처럼 보였다.
 막내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막내는 내가 사십 가까이에 낳은 늦둥이다. 내가 퇴직을 해도 학교를 마치지 못한다. 오늘처럼 막내에게 떨어지는 빗물만이라도 막을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보지만, 복잡하고 각박한 현실에서 내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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